<제 10강> 지나간 부활과 오는 부활
만일 내가 왕자라면 어느 곳에 가든 자신의 신분 때문에 함부로 행하지 못하고 신분에 걸맞은 행동을 하게 되듯이, 우리가 자신의 신분에 대해 바로 안다면 삶의 내용도 엄청나게 향상될 것입니다. 성령에 의해 거듭났다는 말은 신분상 하나님의 자녀요 왕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새로운 피조물로서 하늘(하나님 안에)에 앉혀졌습니다(엡2:6). <요5:25>~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요14: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고전15:22>아담(옛사람)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새사람)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죽고 사는 것은 겉 사람은 그냥 있지만 내면의 변화된 상태를 의미함) 이와 같이 JX의 부활의 영을 받은 자들을 일컬어 영의 구속, 즉 영이 부활한자요 산자들이라 합니다. 그러나 사단은 이것을 가리고, 미래 언젠가에 주님이 하늘 구름타고 오실 때에 무덤에서 부활한다고 속이고 있습니다. 이것도 거짓이지만 현재의 ‘부활체’를 희석시켜서, 줄곧 연약한 아담의 모습을 강요하며 이룰 구원을 방해하고 있으니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분에 대한 바른 이해는 현재 능력 있는 신앙생활을 이끌어 내기 때문입니다. <고전15:23~24>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의 임재 안에서 그에게 소유된 삶이요. 그 후에는 결말(텔로스)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내 삶의 최종 결산)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원어직역) ※내가 곧 나라요 제사장임(벧전2;9 / 계1:9 계5:10) 본문은 2천 년 전 주님에 대한 말이 아니라 지금 각자가 자신 안에서 거듭나고(부활의 주님이 살아나고), 혼의 구원을 이루는 삶을 살다가 몸의 구속을 받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것인데, 오역으로(교리의 선지식 때문) 공중휴거를 떠올리게 되는 구절이기도 하지요(그리스도 강림할 때 그에게 붙은 자요-이 말은 자칫 영이 되신 주님이 물질적인 구름을 타고 하강할 때 성도는 공중으로 올라가는 상상을 하게 만드는 위험한 오역임). 그리스도가 어디에서 부활했다고요? 예루살렘 성 앞에 있는 감람산에서요? 2천 년 전의 그 곳 아리마대 요셉의 돌무덤에서요? 아니지요. 주님은 독생자로 나실 때에 정결한 처녀 마리아를 통해 나셨지요. 이것은 깊은 영적인 비유입니다. 마리아는 ‘모반’과 ‘반역’이라는 ‘미리암’에서 온 말이지요. 즉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난 자를 상징한답니다. 바벨론 포로(이 시대는-교파교회)에서 돌아온 자를 헵시바요 뿔라라 하시며 주님은 그 자를 아내 삼으신다는 말이지요(사62:4). 마리아에게서의 탄생은 독생자로의 탄생뿐만 아니라 마리아의 대를 잇는 우리 모두 안에서 성령으로의 탄생을 이중적으로 계시하고 있답니다. 이렇게 주님은 반드시 해를 입은 여인에게서 탄생합니다(계12:1~9). 영으로 말이지요. 주님이 내안에서 탄생하시는 것이 부활이요 여기가 요셉(실존이 증가된 자)의 돌무덤인 것이지요. <고후3:17> 지금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kjv) 이어서 성경의 혼의 구원에 대해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다른 말로는 이룰 구원이라 하는데 혼의 구원을 여하히 이루느냐에 따라 해의 영광, 달의 영광, 별의 영광으로 차등이 생기기 때문에 서신서의 많은 부분이 이것을 말하고 있답니다. 그 말을 여기서는 그리스도의 임재 안에서 그의 소유 된 삶이라고 표현 했지요. 영이신 주님은 말씀을 들을 때, 묵상 할 때, 혹은 사건 속에서 항상 임하시지요. 머리 털 까지도 세신바 되시는 그야말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간섭이 없이 우연한 일들이 나에게 일어날 수가 없답니다. 구원을 위해 환경을 조성하신답니다. 그러니 그 때마다 영의 생각으로 육신의 생각을 쳐서 복종시킨다면 내안에서 하나님의 소유가 하나씩 늘어가는 것이요, 신령체가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로 지어져 가는 것이랍니다. 이렇게 고난과 시련 속에서 집이 완성되면 이제 주인이신 주님이 온전히 거하셔야 되겠기에 거푸집인 겉껍데기를 부수어 버리겠지요. 맨 나중에요... 여기서 ‘결말’이란 헬라어로 텔로스라고 하는데 이는 최종 결산을 의미하는 말로 육신의 장막을 벗는 것을 뜻하며 몸의 구속(롬8:23)이라고도 합니다. 처음 거듭날 때 영의 구속(부활)이라고 했듯이 최종적으로 썩을 육신을 탈출하여 신령체로 변형되는 것을 몸의 부활(구속)이라 합니다. 이 날은 개개인 마다 틀리며 알 수 없으니 주님이 도적같이 오신다고 했습니다. 그 순간에 곧 주님을 대면하여 보게 되니 이를 ‘주의 나타나심’ 혹은 ‘재림’이라고도 하지요(골3:4, 벧전 5:4). 영의 부활은 이미 이루어진 과거이지만 몸의 부활은 얼마 있으면 맞이할 결산의 순간이 될 것입니다. <요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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