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와 생명의 증거
죄인임을 깨달으라.
나그네의 본향
2020. 6. 19. 07:26
온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찾거나
오직 그만을 바라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의 죄인됨을 깨닫지 못해서 입니다.
죄인으로 태어나서
자신의 죄인됨을 알지 못하면
죄를 짓지 않으려 하면서도
계속해서 죄를 짓게 될 것입니다.
만일 죄인됨을 깨닫게 되면
죄가 현저히 줄 것이요,
말 수 또한 크게 줄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바르게 살려는 의지가 없어지고
다른 사람에 대한 판단과 정죄를 그치며
선생이 되어 가르쳐서
고치려 하는 태도도 없어질 것입니다.
만일, 죄짓지 않으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직, 자신이 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죄인임을
알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일차적인 단계는
자신이 결코 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을 수 밖에 없는
죄에 대한 관심을 끊고
죄의 생명에서 건져주실
그리스도를 바라게 될 것입니다.
그 의미는 자신을 불쌍히 여겨주어
자기 존재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차원에서
그의 자비를 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할 이유입니다.
그리고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그를 바라게 될 것입니다.
그는 죄인인 자신에 대해 할 말을 잃게
될 것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동질성을 가지고 대하게 될 것입니다.
죄인인 자신을 대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도 그처럼 대하여
죄에 빠져 살아가는 사람의 비참함을
알고 대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에 대한 판단이나
정죄가 없어지고
그 때문에 미워하거나 분노하는 일도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죄를 짓지 않으려는 것은
죄인임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죄인이니 마음껏
죄나 짓자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죄인임을 깨달아서가 아니라
죄를 즐기고 싶은 욕심 때문입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았다면
죄를 짓지 않으려는 시도가
헛됨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죄를 지으려고도
하지 않게 됩니다.
죄는 고통을 가중시키기 때문입니다.
죄인임을 깨달았다는 것은
스스로 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그리스도를 바라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죄를 짓지 않으려는 시도가
헛됨을 알기에 오직 구원하시는 주의
긍휼하심을 구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활동력이 현저히
줄게 될 것입니다.
말 한마디, 생각 하나 하나에도
죄가 있으며, 눈빛 하나에도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애통하는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되면
모든 삶이 잿빛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결코 세상을 즐거워할 수 없을 것입니다.
주어진 삶이니 그저 따라 살 뿐,
모든 마음의 중심은
오직 그리스도의 자비와 긍휼을
구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선을 행하고 기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것을 자랑스러워 하고
알리고 싶어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본성적으로 자신이 죄인임을
나타내는 것 아닙니까?
그럼에도 그렇게 행한다는 것은
자신이 죄인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선한 행위로 자신의 죄인됨에 대한
부담을 덜고 잠시나마
그것으로 만족과 기쁨을 삼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드릴 예배를 드리고
기뻐하며 그것으로 감사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람이 하나님의 뜻으로 생각되는 것을
행하고 기뻐하는 이유가 뭘까요?
자신의 죄인됨을 그것으로
잊으려 하고 안심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드려야 할 예배를 드리지 않았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요?
불편할 뿐만 아니라 죄스런 마음이 들어서
마음이 평안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를 자신의 전부로 삼고
행하는 믿음이 아니라,
자신의 행함으로써 의롭게 되려는
율법적 자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은 자는
죄를 짓든, 짓지 않든 그것이
자기 존재에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의를 행하든지 행하지 않든지,
그 또한 죄인인 자기 존재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함을 알기에
의를 힘쓰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는 항상 그리스도를 바라게 될 것이며,
그의 은혜를 입고 죄인의 존재에서
벗어나기까지는
항상 마음 중심에 간절한 소망과 기대를
갖게 될 것입니다.
그의 온 관심은 죄인인 자기 존재로부터
벗어나는 일일 것입니다.
여리고 성의 삭개오가 그런 자였습니다.
그런 그였기에 재산의 절반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줄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진정한 문제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리고 성의 수 십만의
사람들 중에
오직 삭개오만이 그리스도를 만나
구원에 이르는 은혜를 입게 된 것입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은 자는
사는 문제에는 그다지 관심을
갖지 못하게됩니다.
자신의 당면문제가 죄인인
자기 존재로부터 벗어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면
자신이 가진 모든 재산도
그리 소중하지 않는 것입니다.
대개의 그리스도인들은
겉으로는 죄의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그리스도께 감사하고
하나님께 예배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물질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죄 문제를 경험할 때마다
애써 태연한 채 하려고 하지만
사실은 매우 곤혹스러워합니다.
물질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물질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 생명이 버려진 적이 없고
본질적인 죄의 문제 의식도
가진 적이 없는 자들입니다.
모습으로만 그리스도인일 뿐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의 본질적인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찾은 적도,
그를 만난 적도 없으며
여전히 죄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실상 믿음과 상관이 없는 자들입니다.
어제 한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오랜 기독교 집안에 속한 분이었습니다.
할아버지 때부터 교회 개척을 통한
영혼구원을 최선으로 여기는
경건한 그리스도인 가문이었습니다.
본인 또한 영혼구원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행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행함에 최선에
가치를 두고 있었습니다.
물론 믿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최선의 가치는
곧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를 전부로 여기고
자신은 그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상태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는 어떻게 사느냐에 관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죄인의 특성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오직 그리스도로 기뻐합니다.
그리스도가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사역은 덤입니다.
자신이 참 믿음을 소유하고 있을 때에
그의 은혜로 되는 일입니다.
따라서 안식하는 그리스도인은
행함에 가치를 두고 행하지 않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로 기뻐하는 것이지
어떻게 사는 것과 행하는 것에
관심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그리스도인일 때
사역은 그가 행하는 것임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은 자는
행함에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곧 죄인의 행함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소속에 관심을 둡니다.
세상인가 그리스도인가?입니다.
그는 제사(행함)에 관심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의 긍휼에 관심합니다.
그는 오직 그리스도로 기뻐하고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바로 그같은 자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사역입니다.
그 외는 불법이 될 것입니다.
죄를 깨닫기를 바랍니다.
죄인은 죄를 지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죄를 깨닫고
그리스도를 영접한 것으로
거듭남에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 때부터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야 하고
그런 후에 자기 존재의 죽음이 믿어지고
그리스도의 긍휼이 임하여
거룩한 생명이 주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 때에야 죄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당신이 전적으로 그리스도만을
바라지 않는 이유는
죄를 깨닫지 못해서입니다.
그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그러면 죄인의 삶에 민감해지고
온 마음의 중심이 그를 향하게 될 것입니다.
- 김윤창 pasto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