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와 생명의 증거

자기 부인 믿음의 조건.

나그네의 본향 2020. 9. 7. 08:29

자기 부인, 믿음의 조건


앤드류 머레이는
그의 책 '겸손'에서
윌리암 로오의 글을
다음과 같이 인용했다.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두 가지 사실이 있다.
첫째는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우리 자신으로부터의
구원일 뿐 아니라,
태어날 때 물려받은 죄성으로부터의
구원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타락한 인간을 향해 주시는
주님의 첫 번째
영원불변의 조건은
'자기를 부인'하지 않는 사람은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자기'란 타락한 본성에서
비롯된 모든 악을 포괄하는 용어로서
자기를 부인함은
구원을 받기 위한 우리의 자격이다'

글의 의미를 볼 수 있는 사람이
적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십 오년 이상을 십자가복음을
전해 온 내가 느끼는
목회자들을 포함하여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공통된 사항은
복음과 믿음의 의미를
낱낱이 밝혀 주어도 깨닫지 못하고
알려 하지도 않으며
신중하게 접근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은 것을 보는 것이다.

바울이 '심는 이'와 '물주는 이',
그리고 '거두는 이'를 언급했다.
'심는 이'는 복음을 심기만 하고
그 결과를 보지 못한다.
그리고 '물주는 이'는 누군가
복음의 씨앗을 뿌렸을 때
그들이 자라도록
말씀으로 지속 양육하는 자이다.
그런 후에 '거두는 이'가 따로 있다.

어쩌면 나는 거둠을 받는 이가
누구인지 보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복음을 받고
그 안에서 살고자 하는 이들을
보는 것이 어렵다.




앤드류 머레이의
구원에 관한 로오의 글을 보자.

구원이 무엇인가?

예수를 주로 영접하는 것인가?

물론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를 주로 영접하는 기도만 따라할 뿐
실제로 자신이 그대로 주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더 심각한 사실은

오늘날 대개의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에 대한 개념조차도 모른다는 점이다.





로오는 구원을 죄성을 가지고
탄생한 자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기에게서 난 것들을
부인하고 그리스도만을
따르는 결과라고 했다.
곧 자기 부인을 가리켜
구원을 받기 위한
조건이나 자격이라 했다.

자기 부인은 죄성을 가진
자기에게서 난 생각과 판단과
지혜와 의지나 감성 등을
신뢰하거나 주장하지 않고
내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 구원이 자기로부터
벗어나 영원하신 분과 영적으로
하나가 되는 일은
결코 영접기도 하나로 되는 일이
아니다.
실제로 구원이란, 우리에게 주어진
일생이 걸린 엄청난 일이며
평생이 소요될 정도의 큰 목표이다.

한 가지 묻겠다.
자기를 부인하는 그리스도인을
본 적이 있는가?
그 흉내라도 내려는
사람을 보기도 어렵다.

믿음에는 자기 십자가,
곧 자기 죽음이 전제되며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본분임에도 불구하고
이제 육십을 눈 앞에 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만나 본 적이 없다는 것은
정말 의아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정말 자신의 믿음을 회의하며
진정한 믿음에 대해
진정성 있는 고민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을 보기가 어려웠다.
간혹 있다 해도 그 믿음의 자세가
신중하지 못할 뿐 아니라,
과감한 결단력이 부족한 것을 보고
실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개의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 생각을 굽히지 않으며
자기 판단을 신뢰하지만
정말 자기를 부인하고
내려놓는 사람을 보는 것은
어려웠던 것 않다.



구원이란,
타고난 자기 존재로부터
벗어나는 일이다.



그리스도는 주의 성령이 임하여
사람들을 자유케 하는
일을 행할 자신을 소개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4:18,19)고 하셨다.

구원이 무엇인지
굳이 그에 관한 책을 읽거나
공부할 필요도 없다.
잠시만 깊이 생각해 보라.
그것은 타고난 자기 존재로부터
벗어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는 일이다.
단지 구원을 필요로 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은

성경을 보고, 예배를 드리며

교회 생활 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존재로부터 벗어나려 하지 않으면

믿음의 삶을 시작한 것이 아니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지금까지 여러 그리스도인들을
만나 오면서
정말 기가 막히고 혀를 내두를 만한
사람들을 보고 경험해 왔다.
이렇게 말하는 나는 용서하라.

나는 말씀에 근거한 진정한
그리스도인을 본 적이 없다.
물론 나 자신도 목회자가 되어
목회를 한 후에야
진정한 복음을 깨달았다.
그런 후에 본 그리스도인들을
말하는 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장차 지옥불 가운데서
보게 될 것이다.
그들 대부분은 자신들이 믿는 예수를
왜 믿는지조차도 모른다.

그들에겐 자기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목표의식도 없다.
그저 믿어서 행복하고
천국에 들어간다는 확신이
있으면 그만이며,
어떻게든 많은 공로 쌓기를 원한다.
또한 자기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며
죄인인 자기를 사랑하고 있어서
굳이 벗어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런 그들이 그리스도를
믿기 위해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며
이미 부인하고 있거나
그래야 한다는 정도쯤으로 생각한다.

그리스도를 믿는 시점은
복음을 듣기 전후에
자신에 대한 완전한 절망이 있든지
아니면
완전한 죄인인 자신에 대해
아무런 희망이 없든지,
비록 막연하기는 하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모든 자기 시도를 버리고
오직 그를 좇고자 하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혹시라도 그리스도나 믿음을
향한 자기 시도를 중시하거나
예배를 비롯한 종교적 행위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사실상 믿음을 가질 수 없다.




왜냐하면

믿음이란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좇는데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자기를 부인해야 할 정도로

자기를 미워하고

자기 생각이나 의지를 버리고

내려놓아야 할 정도로

자신에 대한 아무런 희망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믿음의 삶을 시작할 수가 없다.





"그래 이 복음이 맞아!"
하는 정도로는 안된다.
그에 합하여 자기에게서 난
모든 것을 버리거나
내려놓을 각오가 있어야 하며
그것이 마땅함을 깨닫고
삶에서 따를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이 복음에 대해 어떤 지식을
갖고 있으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고
그를 경외하며 높이고 있으며
얼마큼 헌신적인 삶을
살고 있는가는 중요치 않다.
그것은 자기 부인과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참으로 믿기를 원한다면
그런 자신에 대해 어떤 가치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오직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전부로 삼고자 해야 한다.

이같은 자세가 없이는
아무도 장차 주를 보지 못한다.
믿음의 바른 자세가 없이는
헛된 믿음에 머물 뿐이며
그저 조금 애쓰다 마는
종교인에 머물다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리기를
바란다.
자기 부인, 이는 믿음의 조건이다.
아직도 그에 미치지 못하면
믿음의 길은 멀기만 할 것이다.

20.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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