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와 생명의 증거

참 믿음이란 어떤것을 말하는가?

나그네의 본향 2021. 5. 2. 07:59

참 믿음이란 어떤것을 말하는가?
 
 
요한복음 10장 10절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참 믿음은 자기의 옛 생명에서 난 의지로써 살려는 것을 포기하고 그리스도의 새 생명으로 그리스도로 살기 위해 그리스도를 바라는 끊임없는 행위을 말한다. 그래서 이 참 믿음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오는 것이다. 마치 죽은 자처럼 자신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여기는 자에게 하나님의 불쌍히 여겨주심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 참 믿음으로 믿는 자에게서 그리스도의 삶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스스로 아무 것도 하려 하지 않으셨다. 만일 어떤 믿는 자가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소유했다면 스스로 아무 것도 하려 하지 않으셨던 그리스도와 같은 삶의 태도를 보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 것이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죽기까지 스스로 행하려 하지 않으셨다. 그 결과는 사람들의 오해와 멸시와 모욕을 동반한 죽음이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사람들이 인정하는 참된 믿음이란 자신에 대해서 죽고 그리스도에 대해 사는 것이다. 사실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실제로는 십자가를 지나 그리스도의 생명을 맛보기 전까지는 전혀 알 수 없는 신비한 것이 곧 이 참된 믿음인 것이다. 그래서 사실, 믿음을 설명하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결혼하지 않은 처녀가 결혼생활을 알 수가 없듯이 그런 것이다.
 
그래서 믿음이 아닌 것을 말하는 것이 더 쉽다. 그러나 믿음을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 마저 말하기가 어렵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믿음이 거짓으로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를 원하는 참되고 정직한 사람만이 기꺼이 듣고자 한다.
 
때로는 믿음에 대해서 반드시 말해야 할 때도 있다. 그것은 참 믿음을 위해선 자신의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가난한 마음을 소유한 자가 있을 때이다. 예수님께서는 자주 비유로 말씀하셨다. 아무나 복음을 듣고 돌아와 고침받는 것을 원치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들은 특히 하나님을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었다.
 
하나님을 안다고 생각하거나 자신에게 믿음이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참 복음의 말씀을 오해하는 경향이 많다. 그들은 예수님이 그들의 잘못된 믿음을 지적할 때 크게 반발했던 유대인들처럼 거친 반응을 보인다. 만일 그들에게 참 믿음이 있다면 그럴 필요가 없을 것이다.
 
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믿음이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임을 알기 때문에 사람들을 주장하려는 자세를 갖지 않는다. 믿음은 설득하는 힘에서 나오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또한 가르치려는 노력에서도 비롯되지 않으므로 논쟁을 통해 굴복시키려 하거나 믿게 하려는 의지를 발휘하지 않는다.
 
주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을 믿게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무나 믿게 될까봐 복음을 비유로 말씀하셨다. 복음은 가난한 자에게 증거되어야 하며 그들만이 복음을 받아들이게 된다. 가난한 자란 자신을 신뢰할 수도 없고 세상 어디에서도 참된 진리의 길을 찾을 수 없음을 아는 자들이다. 주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대신해 십자가에 죽으셨다.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할지라도 그것은 믿음의 충분 조건이 아니다. 
 
또한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음을 인정한다고 해서 믿는 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믿음의 충분 조건은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되고 부활하여 하나님 안에 함께 있음을 실제적인 경험을 통해 아는 것이다. 그에게서 나타나는 삶의 양식은 세상에 속한 정욕과 자랑과 자기 주장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혹 나타난다 할지라도 조금도 집착하지 않는다.
 
 
참 믿음의 모습이 있다. 그것은 그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에 있다. 자신과 세상을 초월한 거룩한 삶에서 나타나심이다. 믿음의 사람은 이를 보여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최후의 순간까지 참 믿음의 삶을 위해 끝까지 자기 죽음의 십자가를 붙들며 사는 자의 삶을 통하여 나타나신다.
 
 
십자가 복음은 설득같은 말의 힘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만일 그같은 사람이 있다면 복음의 성격을 모르기 때문이다. 복음은 들을 사람이 따로 있다. 복음을 받아들일 자세가 안 된 사람에게는 믿음이 아닌 것을 지적하여 그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복음은 가난한 자세만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귀하고 가치있는 것을 사나운 짐승에게 주는 것은 서로에게 해로운 일이다. 짐승에게는 먹을 것과 그에게 이로운 것만 주는 것이다. 복음을 불특정 다수에게 전하겠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주님께 집중하면 주인되신 주님께서 마땅한 자를 찾아내셔서 그에게 복음을 증거케 하실 것이다.
 
 
가끔은 복음에 대한 왕성한 열정을 가진 자들이 있다. 그들에게 가난한 심령이란 왕성한 열정을 의미한다. 그들이 만일 참 복음을 이해하고 배우게 된다면 복음을 거부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참 가난한 심령이 없는 복음에 대한 지식은 매우 악한다. 참 복음을 구하는 사람들을 다른 길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자기 죽음의 십자가 없이 복음을 배운 사람은 그는 참 복음을 지식으로만 전하고 실제로는 죽지 않은 자신의 타락한 생명에서 나오는 야망을 채우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을 믿게 하고 그것으로 자기 만족을 삼으려 할 것이다. 그는 결국 생명없는 지식뿐인 사람들을 배출할 것이다.   
 
 
자기 십자가 없이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자신들을 옳게 여기기 때문에 스스로도 속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그들에게 복음을 듣는 자들이야 더욱 잘 속지 않겠는가? 복음을 증거하는 자는 반드시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 그래서 복음은 오직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증거되어져야 한다.
 
 
이 땅에 학습된 율법적인 복음 증거자들이 차고 넘치듯이 십자가 복음을 학습한 복음 증거자들도 있다. 물론 그들은 자신을 참된 복음 증거자로 알고 있지만 자기 죽음이라는 십자가에 근거한 삶이 없다면 오직 주의 나타나심이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자기 십자가의 삶이 없는 복음 증거는 헛되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삶이 강조됨이 없이 듣게된 복음은 지식뿐인 사람들만 만들어낸다. 참 복음은 말의 힘으로 증거하는 것이 아니다. 그 증거하는 내용이 참 복음과 진배없다 할지라도 자기 십자가 삶이 없는 복음은 아무리 오류가 없을지라도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생명있는 복음과 생명없는 복음은 복음의 내용이 결정하지 않고 증거자의 삶에 달려있다. 증거자가 십자가의 삶을 살고 있다면 그리스도가 증거하는 생명력이 충만한 복음 증거일 것이고 만일 십자가의 삶이 없이 증거되는 복음이 있다면 그것은 차라리 전해지지 않은 편이 낫다.
 
 
참 믿음이란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삶이다. 그같은 삶은 자기 십자가의 삶을 살 때에만 가능하다.
자신의 생각이나 뜻을 버리고 오직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는 삶이다. 믿음없이 증거되는 복음은 복음일 수 없다. 내용만 화려하게 증거되는 복음은 오히려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
 
 
참 믿음이란 복음에 대해 얼마큼 제대로 아느냐가 아니라 복음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아는 길은 복음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죽음의 십자가를 지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나타내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스도를 볼 수 없는 그리스도인에게서 듣는 복음은 해롭다. 마땅히 살아야 할 십자가의 삶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이지 참 복음에 대한 말을 듣거나 공부하는 것이 아니다. 십자가의 삶이 없는 자의 증거하는 십자가 복음은 처음엔 오류가 없는 듯하나 후에는 반드시 본성을 드러낼 것이다.
 
 
참된 믿음은 자기 포기와 죽음이라는 십자가를 계속해서 짊어지는 삶의 연속이다. 믿음없이 행하는 자들과의 관계는 시간만 낭비할 것이다. 마지막 때에 참 믿음을 향해가는 분들이 참된 것을 분별하고 도적들의 휘둘림을 받지 않고 풍성한 생명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할렐루야~! 주님께 영광~!!

ㅡ by 김요한Pas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