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와 생명의 증거
머리 둘 곳 없는 그리스도
나그네의 본향
2021. 12. 30. 11:27
[마 8:19]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아뢰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21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많은 기사이적을 행합니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장면을 목도하게 된 사람들에 의해 소문은 삽시간에 번져나가고 이내 수많은 무리를 이룹니다. 이 중 약삭빠른 이들은 ‘이 사람만 붙들고 있으면 먹고 사는데 지장 없고 성공을 보장받을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바리새인의 한 서기관 또한 하나님이 자기 조상에게 행하신 엄청난 이적과 기사를 담은 성경을 필사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은 절대 믿을 수 없는 인간의 속성 때문에 ‘이게 정말 사실일까?’했던 남모를 의구심은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것으로 한 방에 싹 씻깁니다. ‘한 서기관’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이는 하나님 잘 믿는다는 사람들의 심리를 대표하여 등장한 인물입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다윗, 솔로몬 왕국의 화려한 재건이 초읽기에 들어감과 동시에 개인, 가정생활 또한 고생 끝 행복 시작으로 그려졌을 법합니다. 그렇게 대박을 예감한 서기관은 재빨리 ‘선생님이 어디로 가시든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따르겠다’며 굳게 맹세하기에 이릅니다. 그런데, 자신의 굳은 결심을 칭찬해 줘야 할 스승 예수는 이상한 말을 합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마8:20) 이 무슨 분위기에 안 맞는 동문서답이란 말입니까? 더 이상한 건 다음에 이어지는 다른 제자의 물음에 대한 스승의 답변입니다. 한 제자가 인생 최대의 찬스에서 하필이면 아버지가 별세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합니다. 인륜대사의 하나이니 안 갈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된 바에는 스승에게 눈도장이라도 제대로 찍자 싶어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합니다. 절대 능력자 예수를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을 다른 제자도 한 걸 보니 인간의 수준은 조금씩 모양만 다를 뿐 다 같은 걸 알게 됩니다. 제자는 아버지 때문에 아까운 기회를 놓친다 싶었는데, 스승은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아버지 장례를 놔두고 스승을 따르라니? 혼란스러웠던 제자는 사회적 규범 때문에 아버지 장례를 치르러갔겠지만 자신의 생애를 마칠 때까지 이 말씀의 비밀을 알게 되었을 지는 미지수입니다. 그러나 은혜에 의해 복음 안으로 들어온 이들은 이 말씀이 무엇을 말하는 지 금방 알아차립니다.
그렇다면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를 장사하는 게 뭘까요?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눈과 귀가 없어 내일 일을 알지 못 한다, 너희 목숨은 생명이 아닌 안개에 불과하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지만 인간은 육신의 눈과 귀로 잘 듣고 판단하는 지혜라 착각합니다. 하나님이 준 영적인 눈과 귀가 없으면 너희는 죽은 거야! 하시는 건데 인간은 그걸 인식하지 못하는 겁니다.
인간의 생애라는 유효기간 내에 육의 몸은 껍데기라는 걸 깨닫게 하고 그 안에 하나님 자신의 神(신)적인 생명을 심어 그리스도 즉 하나님으로 만들고자 하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분명 죽은 자입니다. 그 죽은 자가 목숨이 끊어진 육신의 아비를 위해 장례식을 하겠다니 그건 부질없는 일이야, 짧은 인생 언제 죽을지 모르는 너, 나에게 붙어서 속히 진리를 배워 부활하라는 의미를 담은 말씀입니다.
[계 20: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인간은 육신의 호흡이 끊어졌다고 죽은 게 아니라 하나님이 볼 때는 숨 쉬고 있는 너희 또한 죽은 거나 다름없다, 너희 인생이 끝나기 전에 나의 생명을 잉태하여 출산하지 않으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멸망이라는 둘째 사망이라는 겁니다. 내 안으로 들어와 자신의 씨를 뿌리려는 애타는 그의 사랑의 음성을 외면하고 그를 밖에다 두고 우상으로 섬기는 가증한 행위를 계속한다면 그 대가가 무엇이라는 걸 분명히 밝힙니다.
[렘 4:4]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분노가 불 같이 일어나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언제나 똑 같은 얘기를 계속하십니다. 다른 게 있다면 소재만 달리할 뿐입니다. 마음의 할례,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그 목숨은 생명이 아니라는 걸 알라 합니다. “제발, 내 얘길 좀 들어봐! 그러다가 정말 큰일 난다, 아! 네가 가는 그 길은 멸망의 낭떠러지야” 하는 메시지가 쉼 없이 전해지지만 들을 귀 없는 인간은 하나님을 줄곧 밖에다 두고 섬깁니다.
본문,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나간다, 교회 다닌다, 예수를 믿는다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내 죄를 다 용서했다”는 정도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는다, 입술로 시인한다”에서 그칩니다. 그러나 이는 너무도 무지한 반쪽짜리 복음에 불과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은 이 땅에 있는 동안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는 영의 몸(고전15:44)이 되어야 합니다.
혼(프쉬케)인 인간은 영(프뉴마)인 하나님을 감지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이 나올 수 없습니다. 그것은 알지 못하는 신입니다.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눈과 귀를 주지 않았는데 안다 하니 거짓말 하지 말라 하는 거고, 거기에는 반드시 죽이라 했던 거짓 증언이 들어있는 줄 그들은 모릅니다.
하나님은 ‘나를 잘못 알고 섬기면, 사람의 마음으로 육신의 생각으로 나를 판단하면 그건 우상이야’라고 하시는데, 인간은 이 메시지를 인지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자신과 만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습니다. 그와 나의 소망이 같을 때, 그가 주고자 하는 것과 내가 바라는 것이 같을 때 그를 분명히 만나게 됩니다.
영을 알지 못하는 인간이 하나님을 섬기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 안으로 찾아와 섬기고 양육하여 하나님 자신의 아들로 만들고자 합니다. 말씀을 듣고 또 듣는 가운데 그 진리의 말씀에 의해 나의 목이 베어지고 그리스도의 머리가 내 머리로 올 때가 있습니다. 이것이 육신의 목숨은 생명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 때에 주어지는 은혜의 죽음입니다.
이렇게 머리로 가서 인간을 섬기고자 하는데, 그 안에서 하나 되어 하나님 자신의 생명인 말씀의 씨를 뿌려, 싹이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으로,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막4:28)를 거쳐, 스스로 있는 자가 되게 하려는데, 이를 아는 인간이, 이렇게 되기를 원하는 인간이 없다는 겁니다.
육신의 코에 호흡이 있는 동안 예수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로 부활해야 하는 걸 모르고, 영으로 거듭나야 하는 걸 모르고, 인생을 더욱 윤택하게 풍성하게 해주는 우상, 육신적 믿음을 신봉하는 꿈에서 깨어나지 않으면 평생 “주여! 주여!”하고는 엉뚱한 길로 갑니다.
하나님이 모세오경, 구약 전체를 통해 그토록 강조하셨던 성전의 의미, 그와 내가 하나 되고자 하는 마음 성전, 그 성전에서 기이한 사랑을 알려주기 위해 보혜사로 오고자 하는데, 이를 받아줄 자가 없어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하시는 마음을 그의 은혜로 알게 되시기 바랍니다.
[계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카리스 에클레시아 이화율 집사
Daegu / 010-3032-82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