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보는 안목
죄를 보는 안목
사람들은 죄를 법을 어긴 것으로 생각 하지만 성경은 죄를 자기를 위장하거나 사물의 본질을 오해하는 것으로 말합니다.
때문에 창세기3장의 죄가 죄의 본 얼굴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성경의 기준이 됩니다.
(창세기3:7~10)“7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위에서 그들, 아담과 하와가 벗은 것을 부끄러움으로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과,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은 것이 죄의 결과에서 드러난 인간의 모습 입니다. 부끄러움을 가리는 행동은 선악과를 먹고 난후 생긴 결과 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죄란 마귀의 허상을 실상으로 보는 것이며 그것은 자기 사랑이라는 우상이 하나님으로 자리잡아 썩어질 것을 영원한 것으로 알고 살아가는 인간의 실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고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이후, 인간은 하나님의 의도에서 벗어난 존재가 되었습니다. 마치 소경만 사는 마을처럼 눈뜬 자가 오히려 이상한 존재처럼 느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늘일 을 말했을 때 반응한 인간들의 모습 같은 것입니다.
때문에 인간이 어떤 선을 행하여도 하나님이 더러운 걸레처럼 여기는 것이 그것입니다. 선악과를 먹고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러운 것에 몰두 한다는 것은 육신을 실체로 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8:9)절에서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합니다.
고로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영이 있는 존재라면 그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게 되어 있습니다. 반대로 성령이 없는 자는 자기의 뜻대로 삶을 살수 밖에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죄입니다.
즉 하나님의 뜻대로 태어난 새로운 피조물은 자기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후서5:15,16)“15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16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상기와 같이 하나님의 영이 있는 사람은 육신대로 살지 않습니다. 육신이 전부 였던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전부라는 것을 알려 주시려고 성령을 보내심으로 영의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고로 영의 사람은 육의 삶이 아니라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실체로 보고 거기에 마음을 두는 것입니다.
따라서 선악과를 먹고 육의 눈이 밝아진 것을 바꾸어 원래 창조하신 영적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입니다. 고로 지금의 우리 육체는 옛사람입니다. 이미 죽어서 재가 되어버린 나의 육신은 사라졌고, 우리의 죄를 덮으신 예수님의 피만 남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모든 부끄러움을 덮으셨기 때문입니다. 즉 나의 구원이 증거가 아니라 예수님의 피가 증거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많은 경우 그리스도를 증거 한답시고 자기 구원을 간증하는데 그것은 앞뒤가 뒤바뀐 뒤틀린 시각입니다. 구원 받았는가가 질문의 요점이 아니라 성령으로 거듭났는가를 묻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모든 종교는 교리를 배우면 되지만 기독교만은 성령으로 거듭난 후에 구원이 성립된다는 말입니다.
모셔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