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반(半) 아리우스주의(主義)
반(半) 아리우스주의(主義)
이들은 아리우스주의의 극단적인 입장을 수정하기는 했지만 성부·성자·성령이 동일한 실체(實體)라는 교회의 정통적인 가르침에는 여전히 미치지 못했다.
아리우스는 성부·성자·성령이 독립된 3본질(ousiai) 또는 실체(hypostaseis)이며, 성자와 성령은 성부에게서 신성(神性)을 물려받았을 뿐 유한한 존재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하느님보다 열등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수정 아리우스주의자들은 성자가 성부와 '닮았으나'(homoiousios) '동일 본질'(homoousios)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고대 그리스어의 '요타'(ι) 1자로 구별되는 2단어를 둘러싼 이 교리 논쟁 때문에 "그것은 요타 하나만큼의 차이도 없다"는 말이 유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정통 그리스도교인들에게는 그 요타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아리우스주의나 반아리우스주의 모두 니케아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선포되었다(325).
아리우스
아리우스, 250경 리비아~336 콘스탄티노플,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도교 성직자로서, 그의 가르침 때문에 아리우스주의라고 알려진 신학사상이 생겼는데, 아리우스주의란 그리스도가 피조되고 유한한 본성을 지녔다고 주장하는 사상으로 초기 교회의 정통교리에 도전하는 주요이단으로 비난을 받았다
아리우스, 250경 리비아~336 콘스탄티노플,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도교 성직자로서, 그의 가르침 때문에 아리우스주의라고 알려진 신학사상이 생겼는데, 아리우스주의란 그리스도가 피조되고 유한한 본성을 지녔다고 주장하는 사상으로 초기 교회의 정통교리에 도전하는 주요 이단으로 비난을 받았다
알렉산드리아 지역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금욕적· 도덕적 지도자인 아리우스는 신플라톤주의를 집대성하여 가르침으로써 많은 추종자를 얻었다. 신플라톤주의는 신성의 절대적 단일성만이 최고의 완전성을 의미한다고 강조했고, [신약성서]에 대해서는 문자 그대로 해석하려 하면서도 합리주의적인 해석을 하려고 했다. 이러한 관점은 323년경 그의 주요작품 [연회 Thalia]의 시 구절을 통해 공포되었고, 노동자와 여행자를 위한 대중가요를 통해 널리 퍼졌다.
325년 5월에 열린 니케아 공의회는 그리스도가 하느님과 똑같은 신성을 지녔다는 신조에 서명하기를 거절하는 아리우스를 이단자로 선언했다.
소아시아에 있는 동료들과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의 딸 콘스탄티아의 영향력 있는 지지로 인해 아리우스는 추방 상태에서 돌아올 수 있었고, 타협신조에 동의한 뒤 교회로 다시 입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화해를 하기 바로 직전 콘스탄티노플 거리를 걷다가 쓰러져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