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온전한 구원을 향한 믿음의 길....
온전한 구원을 향한 믿음의 길.....
(히 9:4)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비석들이 있고
9:4 χρυσοῦν ἔχουσα θυμιατήριον καὶ τὴν κιβωτὸν τῆς διαθήκης περικεκαλυμμένην πάντοθεν χρυσίῳ ἐν ᾗ στάμνος χρυσῆ ἔχουσα τὸ μάννα καὶ ἡ ῥάβδος Ἀαρὼν ἡ βλαστήσασα καὶ αἱ πλάκες τῆς διαθήκης
9:4 אשר לו מזבח הזהב לקטרת וארון הברית מצפה זהב כלו ובו צנצנת זהב אשר המן בתוכו ומטה אהרן אשר פרח ולוחות הברית׃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만나주시는 장소가 어디입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을 만나는 곳은 성막중에도 지성소의 언약궤 위 속죄소 사이에서 만나 주십니다. 우리 몸으로 치면 여러분의 심장이 바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만나주시는 장소이며 이곳을 마음 성전이라고 합니다.
(출 25:21-22)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하나님께서 언약궤의 뚜껑인 속죄소 위의 두 그룹 사이에서 모세를 만나신다고 말씀 하십니다. 두 그룹 사이는 빈 공간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인데 그곳에서 여러분을 만나시겠다고 하시는 것이지요.
무슨 뜻입니까? 여러분의 마음 성전에 아무 형상이라도 만들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 빈 공간을 배에서 솟는 생수로 하나님께서 채우셔서 여러분이 간직하는... 말씀으로 심는 것이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아무 형상이라도 만들어 간직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우상숭배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형상이 없으신 분입니다. 여러분의 마음 성전이 이와같이 빈 공간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곳을 생명수(말씀)로 채우시고 여러분을 말씀을 통하여 만나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마음 성전에 어떠한 하나님의 형상이라도 만들면 안되겠지요? 그것이 십자가의 형상이라도 말입니다. 혹은 영화속의 예수님의 형상도 마음으로 가져가 기도한다면 그것이 관상기도이며 우상숭배가 됨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언약궤에 들어가는 두 돌판인 증거판은 두번째의 것이 들어갑니다. 첫번째 것은 던져서 깨어져 버리지요? 구원도 마찬가지로 여러분에게 적용이 됩니다. 여러분이 초림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자신의 육체인 휘장을 찟는 십자가의 대속은 믿는 신자가 죄사함을 받을 뿐이고... 여러분이 구속에서 구원에 이르는 길은 생명으로 오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성령으로 연합=하나됨)으로 인해서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사건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습니까? 그렇게 여길 뿐이지 유월절 어린 양만 죽습니다. 그렇다면 언제 애굽 사람들이 죽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흘길을 나와 홍해를 건넌 후에 애굽 사람들이 물에 휩쓸려 죽습니다. 이 애굽 사람들은 세상에 속해 있던 여러분입니다. 이것을 세례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세례를 받았다고 여러분의 겉사람이 처리가 됩니까? 솔직히 그렇지 않지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피 성령과 성령의 불에 이끌려 광야의 여정(연단의 길)을 걷게되는 것입니다. 이 광야교회에서 여러분의 옛사람이 처리되고 죽는 것입니다. 이 옛사람이 죽어야 여러분이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언약궤를 앞세워서 말이지요.
창세기에 보면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내어 보내신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 동편을 막으시지요? 그리고 아벨을 죽인 가인은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게 됩니다. 제가 왜 이 사건을 꺼내냐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사건을 보더라도 하나님의 경륜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그들을 인도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막을 보더라도 문이 동쪽에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건너게 되는 것이지요.
히브리어로 동쪽에 해당하는 단어가 케뎀(6924 קֶּדֶם)인데... 파자하면 "겉사람이 죽고 속사람으로 세워진 성도가 생명을 문인 그리스도 예수께로 들어가 네모 반듯한 말씀집(언약궤)으로 완성됨"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동쪽이 되어야 요단강을 건너 서쪽이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막이나 에덴의 동쪽 그리고 광야를 거쳐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여정을 통하여 우리들이게 이것을 말씀하시고 싶으신 것입니다.
광야의 여정(연단)을 통하여 겉사람의 어떠함들을 모두 처리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옛것이 헐리고 새것으로 세워지게 됩니다.
다음의 성경 구절들을 봅니다.
(롬 1:23-32)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갈 5:19-21)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위의 성경 구절에서 나오는 겉사람의 성분들이 광야의 여정중에 모두 처리되어야 할 부분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사단의 속성을 광야에서 처리하지 못하게 되면 계속 광야를 돌게 될 뿐 아니라 처리가 될 때 까지 성막을 옮기지 못하게 하시고 그 자리에 머물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내면의 어떠함을 잘 보고 말씀으로 씻어내는 사람들이 복이 있는 자 입니다.
그러나, 들을 귀 있는 사람들만 듣게 되겠지요. 그만큼 자신의 어떠함을 발견하고 씻어내기가 힘든 것입니다. 여러분이 피흘리기까지 사단의 죄성, 그 선과악의 지식과 싸우지 않는다면 겉사람의 죽음은 남의 이야기 일 뿐 아니라 언약궤의 완성이 이루어질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들려지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믿음이란 여러분이 무엇을 해서 얻어지는 것도 아니고 여러분의 열심으로 인해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이 들려져서 여러분 안에 간직됨으로 인해 속사람이 자라나 겉사람을 이길 수 있게 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따라서 언약궤가 완성되기 위해서, 그리고 그 안의 내용물이 여러분 안에 실체가 되기 위해서 여러분의 겉사람이 연단중에 처리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이 들려짐으로 인해서 그렇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말씀의 들려짐... 말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진리의 말씀을 들을 귀가 있습니까?
스스로 한하고 돌아보는 오늘이길 소망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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