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것으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것으로..." (딤 3:16)
이글은 "감동" 이라는 한단어 에만 치중하여 쓰는 글입니다.
감동은 헬라어로 '데오프뉴토스' 로 하나님의 숨을 내쉼 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성경을 기록한 기록자들이 하나님의 감동을 받았음으로 성경이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는 책이며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딤3:15) 성경으로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을수 있음도 말합니다.
성경을 기록한 기자들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말할때 감동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행위임을 알수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기록할때만 감동을 받고 다른일에는 감동을 일절 받지 않은 사람들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감동'을 받는 사람들이며 이것은 성경에 여러곳에 그 증거가 있습니다.
엘리야를 끝까지 따라가며 갑절의 영감이 있기를 바라던 엘리사를 기억하실것입니다.(왕하 2:9)
여기서 말하는 영감이 바로 '감동'입니다. 선지자들에게 임하던 바로 그 감동으로 기자들은 성경을 기록한것입니다. 엘리야도 엘리사도 이러한 감동을 받았으며 느헤미야는 백성을 계수할때 하나님의 감동으로 행함이 성경에 나옵니다.(느7:5)
이러한 증거는 벧 1:21절에도 나오는데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하여 성경의 기자들이 성령에 '감동'되어 하나님께 받았다는 것이 성경의 신실함을 증거하는 성경의 자체적인 증거가 됩니다. 이러한 '감동'에 대해 엘리후는 말하기를 "사람의 속에는 심령이 있고 전능자의 기운이 사람에게 총명을 주시나니"(욥32:8)
바로 이러한 기운이 하나님이 숨을 내쉼인 "데오프뉴토스" 입니다.
브살렐에게 공교한 일을 하게 하신 하나님은 " 하나님의 신을 그에게 충만케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여러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출35:31) 다시 옷니엘에게도 감동하시고(삿3:10) 입다를 감동하시고(삿11:29) 다시 삼손을 감동하시고(삿13:25) 삼손으로 하여금 엄청난 무용을 갖게 하심(삿15:14)을 볼때도 하나님은 사람들을 '감동'하심으로 사용함을 알수 있습니다.
신령한 노래를 하게 하시는 대상 25:1~5 과 고전 14:26 과 골 3:16 으로도 알수 있듯이 우리의 찬송도 이러한 감동으로 되어지는것이 성경적인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감동없는 메마른 찬송과 감동으로 충만할때의 찬송이 다른것을 경험하신 분들도 있으실것입니다.
또한 순교자들에게도 이러한 감동이 있을것임을 주님이 말씀하여 주심을 (마10:19~20) 볼때 이러한 감동은 지금도 지속될것임을 매우 쉽게 알수 있습니다. 이러한 감동의 현재성은 고전 12:4~11 에서 증거하듯이 현재적인 나타남으로 성령의 나눠주심으로 지금도 이어져 오고 있음도 매우 쉽게 알수 있습니다. 아홉가지 신령한 은사들중에 어느것은 지금 나타나고 어느것은 안나타난다고 하는 그러한 가르침들도 현대 교회에 있음도 역시 알고는 있습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것이 하나님의 감동은 지금도 지속되느냐 아니면 지금은 그쳤느냐 하는 논란이 현재도 존재 합니다. 너무나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말한다" 하면서 거짓 선지자의 계보를 이어 오고들 있으며 너무나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감동은 성경을 읽을때만 주어진다" 는 식으로 성령을 제한하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현재는 하나님이 사람을 감동하실 이유가 없고 이것은 우리에게 성경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에 대한 관련 증거로 가장 많이 제시되는 것이 고전 13:10 입니다. 온전한것= 성경이다 라는 의견을 제시합니다. 혹은 우리는 장성한 교회에 있기 때문에 이 교회는 사랑을 나타내고 그래서 부분적인것이라고 볼수 있는 성령의 감동으로 되어지는 여러 신령한 일들은 어린아이로 간주하여 그치는것이 맞다 는 식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교회를 감동하시기도 하지만 한사람 한사람을 감동하시기도 합니다.
한사람에게 임하는 감동의 기록과 전체 회중에게 임하는 감동의 기록들을 살펴보면 개인을 감동하신 내용이 더 많습니다. 이것은 줄기차게 어느 한사람을 감동하시어 그에게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신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 이시며 "우리의 하나님" 이십니다.
다시 이것은 우리가 장성한 자가 되는것은 집단적으로 이뤄지는것 뿐만 아니라 먼저는 개인이 장성한 자가 되야 함을 말합니다.이러한 장성함은 새로 태어나는 순간부터 장성함에 이르도록 되어지기 까지 지속적으로 우리 안에서 이뤄져야 하는일입니다.
각각의 사람들에게 '감동'하시는 하나님이 전체를 감동하십니다.
많은 경우 감동을 입은 한사람에 의해서 전체가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선지자들에 관한 기록이 그것이고 사도들의 전도가 그것입니다.
저는 오늘도 하나님이 우리 각사람을 감동하시어 각자의 믿음의 분량을 따라 성경을 깨달게 하시어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것들이 무엇인지를 알게하시는 지혜를 부어 주시기만을 바람으로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감동'을 얻는 가장 안전하고 누구에게나 추천이 가능한 방법이 바로 기도와 성경상고 입니다.
프랑소와 페넬롱은 동료들을 향하여 " 형제들이여 우리는 단호하게 기도와 묵상과 성경상고의 시간을 늘려야 합니다" 라고 했고 기도를 권면하는 성경의 여러 기록의 생활의 충실한 순종과 이러한 것을 말씀하는 성경을 탐목하고 연구하는것이 바로 우리가 진정으로 복을 받는 길로서의 역활이 됩니다.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것을 얻나니" (잠16:20) 로도 알수 있듯이 말씀을 주의하고 말씀에서 지혜를 얻는자는 그 사람자체가 행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점을 가까이 하는것이며 이것이 '좋은것' 인 하늘의 신령한 만족을 주는것이고 이것이 바로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 8:6) 라는 말씀의 응함으로 이어집니다.
우리가 경건의 모양은 갖추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가 되지 않으려면 추구하는 그것이 생명과 평안이어야 하며 이것을 주시기위해 예수 께서 오심을 (요 10:10) 증거하시고 "내가 온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이 생명이 피상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으로만 존재하는것이 아닌 실재적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망하리라"(호 4:14 ) 깨닫음을 얻기위해 감동을 받아야 하며 이러한 깨닫음이 없다면 비천함 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들이며 이러한 존귀함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깨닫지 못하면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같도다" (시49:20) 라는 말씀의 응함이 되어져 우리의 깨닫음이 중요함을 성경이 다시금 증거합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우리가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이 땅에 존재하는지를 나날이 깨달아 가는것이 우리의 첫번째 일입니다. 이러한것에 대한 깨달음이 없다면 그다지 기쁠것도 행복할것도 없으니 활력과 충만한 생명력이 영혼에 충천하는것은 그저 다른 사람들의 일이고 '나는 하나님이 복을 주시지를 않나보다' 하고 그저 근근히 버티는 자의 삶을 살아가기도 합니다.
영혼에 내재된 힘을 느끼는 사람들은 그 힘이 바로 성령이 주시는 감동이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임을 알수 있습니다. 이러한 일에 균형을 이룰것을 사도는 이렇게 증거합니다.
"오직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벧 3:18)
자랄수 없는것을 자라라고 함이 아닌 자랄수 있기에 자라나야 한다는 말씀이며 이러한것을 위하여 성경과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는 기도를 주신것이며 사랑에 가득하신 주님이 이렇게 기도하라는 가르침까지 주심을 생각해 볼때 우리의 기도생활과 성경을 상고하여 받는 은혜의 수준은 늘 자라나야 함을 알수 있으며 주를 아는 지식또한 우리안에서 자라나야 합니다.
그것을 위하여 우리는 감동을 받아야 하고 이 감동이 은혜와 지식에 충만하여 그리스도에게 까지 자라남을 말씀하기를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것으로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3:18 ~19) 하여 우리가 은혜에 사랑에 지식에 자라나야 함을 말씀하심을 기억한다면....
우리가 당장 개인의 경건을 위하여 할수 있는 일들의 풍성함을 추구하는것이 우리의 우선적으로 해야할일이며 이것에 온힘을 기울여 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하늘의 보화들로 영혼에 충족시켜 주실것을 확신합니다.
이글도 그저 "좋은 글이군" 하고 넘어가실것인지 교회와 나 자신과 하나님을 위하여 '감동'을 받고 깨닫음을 얻기위해 경건의 능력이 있도록 사도들과 주님의 모본을 좆을것인지 말것인지는 스스로의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누구보다 제 자신에게 가장 크게 들리는 페넬롱의 권면을 다시 쓰면서 글을 마칩니다.
"형제들이며 우리는 단호하게 기도와 묵상과 성경상고의 시간을 늘려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