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와 생명의 증거

[스크랩] 성결을 위한 그리스도의 사역....

나그네의 본향 2013. 1. 14. 08:00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1:4)

 

그리스도 예수께서 성령.(the Spirit )으로 부활하셨다는 말로 간단히 해석이 되는 말씀입니다.

그 거룩한 영 곧 성령으로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우리에게 성결을 위한 필수 불가결한 것이 바로 성령의 사역이십니다.

 

성령의 사역은 성결함으로 우리를 이끄시는 사역이십니다.

이것은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요 16:13) 라는 말씀으로 알수 있듯이 우리가 진리 가운데로 이끌림을 받는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주께서 스스로를 "진리"라고 하심처럼 우리가 성령으로 진리가운데 곧 예수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는것이 성령의 사역이십니다.  성령의 사역으로 우리가 성결하게 되어 지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하지 않고는 우리는 절대 성결함을 얻을수 없습니다.

 

구약성도들의 성결함은 그들의 예법과 행위에 있었지만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은혜에 우리의 성결을 찾을수 있습니다.

 

성결함을 바라시는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바라보심은 마치 파란 하늘의 청명(淸明)함과도 같습니다. 하나님의 시선이 우리의 영혼을 꿰뚫고 바라보심을 느끼는것은 성령의 감동으로 알아지는 실재(實在, reality) 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바라보심을 "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앞에 있나니 그가 그 모든 길을 평탄케 하시느니라 "(잠5:21) 로 말씀하시며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감찰하사 모든 인생을 보심이여" (시 33:13) 함과 같아서 우리의 폐부까지라도 살펴보시는 하나님 이십니다."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렘 17:10)

 

하나님이 우리를 감찰하시고 살피신다는 성경 말씀은 이외에도 많습니다.

그러한 감찰과 살펴보심에 의해 우리의 죄악과 허탄함이 드러나고 미련함이 드러나는일이 성령의 사역이시며 이것을 아는것이 우리에게 복이 됨을 "여호와께서는 지식 있는 자를 그 눈으로 지키시나 궤사한 자의 말은 패하게 하시느니라" (잠 22 :12) 라는 말씀으로 증거하여 주십니다.

 

알아야 삽니다. 영에 속한 지식이 있어야 살수 있습니다. 사람이 망하는것은 영과 생명에 속한 지식이 없어서 망하는것입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호 4:6) 라는 말씀에서 말하는 지식은 단순히 성경 교리적인 지식이나 신학적 지식을 말씀 하심이 아닌 사람으로 생명을 얻도록 하시는 성령이 부어 주시는 지식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면 하나님께로 부터 이러한 지식을 공급을 받아 누리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것이 중요합니다. 글을 좀 읽었다고 생명주는 참지식이 생길것이라고 착각을 해서도 안됩니다. 성령이 공급하시는 신령한 생명주는 지식은 오직 각사람의 심령에 계시하여 주시는 그리스도 입니다.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골 2:3) 바로 그리스도안에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가득합니다. 이때문에 바울은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죽으신것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을 한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깨달아 아는 것이 그 어떤 지식보다 우월하고 우등하기에 바울은 다른것을 모두 배설물로 여긴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그 어떤 지식이 사람에게 생명을 주겠는지요.

오직 하늘에서 내리신 참 떡이요 참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영혼에 계시함을 받는 이것이 우리 영혼의 부요이며 이것이 성결 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잠 1:7) 이라고 했을때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인가요? 과연 그럴까요?

 

사람이 어떤 능력이 있어서 하나님을 흡족하시게 경외하고 섬길수 있겠는지요. 우리는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오직 이것을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우리 주님을 믿음으로 주님의 아버지를 경외하심에 우리가 접붙임을 받은것입니다. 우리가 경외함이 아닌 주님이 참된 경외가 무엇인지를 보여 주셨고 우리는 그저 주님께 믿음으로 붙어 있는것일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성결을 얻는 유일한 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것 말고는 그 어떤것도 없다는 이말이 참된 말이 되는 것 입니다.

우리의 믿음에 역사하는 성령의 사역에 우리가 참예(코이노니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령의 성결케 하심을 얻으려 사모하는 이는 성령께 순종해야 합니다.

 

성령의 감동에 반응하고 성령의 음성을 듣거든 그때는 이해를 못해도 즉각적으로 순종을 하는것이 우리의 일입니다. 혹자는 이러한 감동이나 성령의 음성을 듣지를 못한다고 하시면서 답답해 하시더군요. 성령님의 통치는 늘 순종하려는 마음을 다잡은 사람에게만 나타나며 이것이 겸손의 실제적인 모습이 됩니다.

 

때때로 이러 저러한 것에 대한 감동을 주십니다.

때로는 구체적인 일에 대한 사모함을 주시고 그것을 명하시기도 하십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이것은 거의 성령의 내적 증거로서 알게 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령의 내적인 증거를 소유한 것은 믿음에 큰 힘과 유익이 됩니다.

이러한 증거들은 늘 공급하시는 분의 의지를 따라서 공급을 하시며 이러한것이 많을수록 신앙에 진보가 있는것입니다. 이 증거를 따라 우리에게 임하시는 그리스도를 얻어 누리는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증거 하시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 이시니라 (요일 5:7)

우리 안에 증거가 필요합니다. 증거는 매우 큰 힘이 됩니다.

흔하게 보는 범인 취조 장면에서 증거제시에 범인이 고개를 떨구는 것을 보신적이 있으실것입니다.

 

단순히 관념과 지적인 동의의 수준을 넘는 증거가 우리안에 있을때 절대적인 부복과 낮아짐이 있고 충성과 순종이 있습니다. 이러한 증거는 분량적인 혹은 강약의 측면이 있기에 누구는 많고 누구는 적습니다. 증거가 많은 그 사람은 견고하고 은사가 풍성하다고 고전 1장 6~7절로 말씀하십니다.

 

지식과 구변이 이러한 증거의 견고함을 주며 제가 이러한 글을 쓰는 목적이기도 하고 은사의 활용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각각의 사람들이 성령의 사역에 온전히 자신을 내어 맡김으로 성결함을 얻을수 있습니다. 거룩함과 온전함을 말하는 성결은 우리 힘만으로는 절대 할수 없습니다.

 

가끔 성경공부나 행위적인 면들로 이러한 것들을 가능할수도 있는듯이 말하는 경우도 보기도 하지만 다 틀린 말입니다. 얼마나 공교하고 얼마나 치밀하게 거짓말들을 해대는지 가만히 들으면 성결의 비밀이 특정 목사님이나 특정 교회에 있는양 말하기도 하는 이러한 일들은 거짓된 행동들이며 사람으로 현혹이 가득한 신앙생활에 만족하게 하는것이 됩니다.

 

우리가 영혼의 성결함을 얻는일은 신앙의 일부가 아니라 신앙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을 위해서 성령의 사역에 온전히 자신을 내어 맡기기 위해 우리가 기도하고 묵상하고 순종함으로 행하는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단단히 붙들고 믿음으로 기도하고 늘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깨달아 가는일에 사모함이 없으면 점점 퇴보말고는 없습니다.

 

신앙이 진전은 아니지만  답보상태라고 생각할지라도 실상은 퇴보인것을 모르면 갈수록 뒤로 처지는 신앙이 됩니다. 깨어 나야하고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눈을 뜬 채로 잠을 자는것 같은 신앙 생활 하시는 분들이 혹 있으시면 이제는 깨어나셔야 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않기를 깨어 있어 기도하라."

 

 

출처 : 베다니사랑과 복음- 평신도 교회
글쓴이 : 본향그리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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