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치인식의 과정.../이병한
1. 돼지에게 진주를 던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돼지는 먹을 것이 아닌 것은 다 밟아버리죠.
가치인식이 되지 않는 자에게
하나님나라는 빵 한 조각 보다 못한
단어일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가치 있는 것을 주시기 원하지만
우리는 보다 현실적인 것을 원하는지도 모릅니다.
둘 사이에 교감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2. 이것이 우리가 주님을
사모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사모하는 마음만 있다면
우리는 무엇이든 다
주님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데
가치인식이 되지 않아
하나님 나라를 사모 하지 못하고
그 속으로 진입해 들어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엄청나게 큰 유산을 상속 받을 자이지만
아직 너무 어려서 상속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3. 주님은 생각다 못해
하나님나라를 상속한 자들에게
가치인식을 위한 훈련의 프로그램을
가동하기로 계획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환란 속에 던져진 이유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으로 가야 하지만
그 땅에 대한 가치인식이 되지 않아
그 땅에 갈 꿈도 꾸지 않을 때
주님은 이스라엘에게
환란 속에 던져 넣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환란은 쓰지만 영원한 가치에 눈을 뜨게 합니다.

4. 만약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나는 왜 다른 사람보다 환경도 안 좋고
고생만 많이 한다고 생각 되시는 분이 있다면
더 가치 있는 것을 받기 위한
과정 속에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분명히 하나님 나라가 더 좋은데
세상 나라에 푹 빠져 지내니
얼마나 한심한 노릇이겠습니까.
그래서 주님은 세상에게 실망하는
프로그램을 나에게 적용하신 것입니다.
세상에서 잘나가는 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더 좋은 나라를 위해서
아픔 속에 있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5. 그러나 가치 인식이 반드시 환란을
통해서만 발견 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환란은 가치에 눈을 뜨게만 할 뿐 그것을 소유하게는 하지 못합니다.
가치를 소유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차원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말씀의 훈련인 것입니다.
말씀은 마치 보석 광산과 같아서
누구든 그 광석을 캐낼 수만 있다면 캐낸 자의 것이 됩니다.
말씀은 쉽게 문을 열어주지 않는 비밀문과 같습니다.
그 문은 너무도 좁고 협착 하여 내 자신이 가루가 되도록
깨어지지 않으면 들어 갈 수 없습니다.

6. 말씀과 내가 부딪히면 둘 중에 하나는 깨어져야 하는데
말씀은 절대 깨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깨어지는 방법밖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말씀의 문은 내가 깨어진 만큼만 열린다는 사실입니다.
보석광산의 광석은 그 광석을 캐내는 것이 아니고
내가 깨어지고 가루가 되어 내 자신이 광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광산의 일부가 되는 동시에
광산전체는 나의 것이 되는 것이죠.

7. 그러나 이것은 소유의 개념이 아닙니다.
소유의 개념은 내가 주인 되는 개념이고
존재적 개념은 주님이 주인이 되는 개념인 것입니다. 내가 주님의 일부분이 되면
주님의 모든 것이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 때 느끼는 관계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거기에서 새로운 가치관이 형성 되게 됩니다.
여기에서 가치관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질의 개념이 아니고
관계를 통해서 오는 영적인 개념인 것입니다.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가치는 잃어버리거나
사기를 당 할 수도 있고
죽음 건너편 까지는 영향을 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일시적인 즐거움을 준 뿐
영원한 것은 아닌 것이죠.
그러나 관계에서 오는 가치는
영원하고 변하지 않으며 사랑의 황홀함이 주어지게 됩니다.

8.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소유 하려고 합니다.
거기에다 집착의 증상까지 나타냅니다.
그것은 마치 성을 만들어 놓고 그 성안에 나를 가두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성을 허물고 광활한 세계에 자유를 누리면 더 큰 행복으로 인도 받을 수 있는데
자기 스스로 돼지가 되어 진주를 짓밟아 버리고 있는 것이죠.
하나님나라는 그 가치를 아는 자가 소유 할 때 더 영광스럽게 빛나기 때문에
우리는 그 가치를 깨닫기 위해 오늘의 현실 속에서
환란과 말씀이라는 도구로 연단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