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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와 생명의 증거

죽은 자에게 들리는 복음

♡죽은 자에게만 들리는 복음③♡

예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14:6)”이라고 하신 말씀은 너희 생명은 생명이 아니니 내가 가지고 있는 나의 생명을 너에게 주겠다는 뜻입니다.

[벧후2:12] 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고 그들의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유1:10]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는도다 또 그들은 이성 없는 짐승 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너희가 본능적으로 생각하는 인간적 차원의 지식과 지혜가 아니라 나의 지식과 지혜를 주겠다는 것입니다.

이성 없는 짐승과 같은 너의 머리, 그냥 두면 멸망으로 향해 가는 너의 그 머리를 베고 내 머리를 주겠다는 게 복음입니다.

[계20:4]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이란 전도, 선교하다가 육적 목숨을 잃은 순교적 차원의 사람을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그 말씀에 의해 자신의 육적인 목숨은 생명이 아니라는 걸 은혜로 깨달게 된 자들입니다.

[롬6:3]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골2:11]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을 받는 자들은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장사된 이들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머리를 베고 그 대신 그리스도의 머리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들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목 베임을 당한 자들입니다.

단순히 나의 죄를 위해 죽어주었다는 관념적인 예수와 십자가는 의미가 없습니다. 자신의 코에 호흡이 있는 동안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께서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17:17)”고 하신 마지막 기도의 한 대목입니다.

이 내용은 하나님 말씀이 진리인데, 그 말씀으로 진리를 알게 되면 하나님을 만났다고 하는 것이고 말씀을 통해 진리가 무엇인지 알면 이것을 바로 ‘거룩’이라고 하는 겁니다.

예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하셨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만났다는 건 말씀이 육신을 쓰고 오신, 생명으로 향하는 길이신 예수의 말씀에 의해 이 육적 목숨을 보유한 내가 죽고 진리를 통해 하나님이 주신 사랑인 생명을 얻음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알았다는 얘깁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입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육신이 생명이라고 여기는 이들에게는 복음이 작용하질 않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이기에 이 땅에서는 볼 수 없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으로서의 생명, 하나님과 같은 생명입니다.

이 신비한 생명은 내가 육신을 쓰고 있는 동안, 이 코에 호흡이 있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는 생명입니다.

[요17: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19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예수께서는 기도 중에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다”고 하십니다.

눈에 보이는 십자가 사건 속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의 지식과 지혜로 감지할 수 없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지식과 지혜로만 알 수 있는 너무도 심오한 뜻입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내 귀에 속삭이듯이 말씀하시는 이 메시지를 누군가는 알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죽은 자에게만 들리는 복음입니다.

카리스 에클레시아 이화율 집사
Daegu / 010-3032-8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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