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없는 믿음
(디모데후서 1:3-5) “3나의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 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4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5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신자는 성령을 받은 사람으로서 성령 받기 전과는 분명 다른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님의 역사로 믿음을 주기 위해 인간 자신을 극한까지 밀어 넣기 때문 입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인간 내부에 자기 육체를 잃지 않으려는 본성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성경은 자기가 자기의 기준과 본성을 믿는 것을 ‘거짓된 믿음’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거짓 없는 믿음’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믿음의 출발점과 종착점이 육체를 둘러싼 허영과 허세와 환상 속에 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고로 바른 믿음의 권고를 받을 때 무턱대고 우길 것이 아니라 사도가 제시하는 내용을 깊이 인지하고 자기를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 집사가 구약 이스라엘 역사를 거론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하나님과 원수 였는가를 증명 하듯이 인간 자신이 세운 이상한 기준을 믿고 사는 것을 송두리째 포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 존재를 진리로 세우실 때 바닥까지 내리시는 이유는 허상과 거품에 쌓인 존재의 껍질을 벗겨 그 속살을 보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창세기의 무화과 치마를 포기하는 길입니다.
때문에 성령을 받았다는 말은 나의 믿음이 부정되고 주님이 주신 믿음만 고백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성령 받기 전과 후가 무엇이 다른지가 선명해집니다. 이것은 행동이 좀 더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존재로 변했다는 차원이 아닙니다.
성령이 오심으로써 신자가 달라지는 것은 육체의 남은 때를 육체와 결별한 사람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베드로 전서4:2,)“2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은 육체의 고난을 받으시는 분으로 오셨습니다. 육체가 잘되는 것과는 반대된 길을 가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정욕은 항상 육체를 향하여 자신의 육체가 세상 속에서 가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때문에 하나님이 신자의 영혼과 육체를 관리하시면 세상에서의 번성과 풍요로움은 극히 짧은 한시적인 것으로 인식 합니다. 오직 영원의 세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 받은 신자의 시선이고 참된 하나님의 언약의 현실을 바라보는 안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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