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제 51 편...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저에게 온 때에
1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2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3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4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다른 사람의 아내를 취하고 이것을 숨기려고 사람을 죽였지만 이것을 사람에게 지은 죄가 아닌
오직 하나님께만 범한 죄라고 고백한 다윗의 고백은 참으로 진실한 고백입니다.
사람에게 지은 죄인데도 하나님께만 범죄함이라고 한 부분은 얼핏 들으면 죄를 범한 그 사람에게 빌어야할 용서를 사람에게는 빌지않고 하나님을 핑계하며 하나님 께만 용서를 구하겠다고 하는 무책임한 생각으로 보여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다윗이 하나님 앞에 나왔을때는 자신이 저지른 죄는 사람에게 지은 것이니 하나님께는 그다지 용서를 크게 구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서는 "저는 오직 하나님께만 범죄하였습니다." 라는 고백을 하는것입니다.
다윗과 같은 범죄를 지은 사람은 사람에게 죄를 지은것은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고
하나님 앞에 범죄한 부분은 오직 하나님 앞에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이부분에 간사함이 있는 경우가
죄를 범한 그 사람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만 범죄하였다 함이며
하나님 앞에서는 자신이 사람에게만 범죄하였다 함 입니다.
다윗의 현재 회개는 하나님 앞에서 이뤄지는 회개이기에
다윗은 전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간사함을 내려놓고 주께만 범죄하였다고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5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지금 다윗은 자신의 행위만을 회개함이 아닌 자신이 존재 자체가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죄를 범하여 죄인이 아닌 죄인이 자기 행위를 한것으로 묘사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잠깐의 실수 였다' 라고 함이 아닌
태생이 죄악의 씨 이고 존재 자체가 죄덩어리임을 깨달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6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
흔히 말하는 진실함보다 더 깊고도 분명한 내면의 가장 깊은곳의 진실인 중심의 진실을 위하여
다윗은 지혜가 필요함을 역설하는 것입니다. 중심의 진실함이 없음으로 죄를 지을수 밖에 없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임을 말씀 하는 것입니다.
7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우슬초는 잎파리가 머리카락 처럼 많은 식물로서 종교적 희생에 사용되는 것으로
보통 피를 뿌리는 용도로 구약에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이 한대목에 이미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설명함이 담겨 있습니다.
16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 아니하시나이다
17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예배의식을 바라시는 하나님이 아닌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과 마음을 바라시는 하나님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는 것은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이 우리에게 있다면 절대로 하나님은 우리를 멸시치 아니하신다는 약속이 담겨 있습니다.
누가복음 18장 9~14절을 살펴보면 성전에 올라 기도하는 두사람이 나옵니다.
바리새인은 자신의 여러 종교적 행위를 의롭게 여기고 다른이들보다 자신들을 의롭게 여기는데
이것에는 자신들의 종교적 행위인 금식과 십일조와 죄의 행위를 짓지 않음을 자랑하는 마음에 있습니다.
반면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는 눈에 보이는 표면적 죄책을 행하지 않음에 있지 않고 금식이나 십일조등의 표면적 행위에 있지않고 세리처럼 차라리 감히 하늘을 바라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자신의 죄를 자각하고 자신이 죄인임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말합니다.
세리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는 정확히 나오지 않지만 세리가 불쌍히 여겨달라고 한 것은 자신이 '본질적 죄인'임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행위를 용서받는 기도가 아닌 자신의 존재가 죄인 그 자체임을 인정하고 긍휼을 구하는 기도가 의롭다 하심을 얻는 기도이며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그리스도의 은혜가 임하는 기도가 바로 자신이 죄인임을 깊이 자각하는 기도 입니다.
뻣뻣한 목으로 하루의 취미 활동의 일환인양 하루에 세번기도하고 여러 종교적 의식을 갖느니
차라리 가슴을 치며 자신이 죄인이며 죄덩어리 자체임을 고백하는 상하고 통회하는 그 심령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임할 것입니다.
다시 다윗으로 돌아와서 살펴보면 다윗은 위와 같은 회개를 하고 변모된 모습을 보입니다.
우리아의 처가 낳아준 아들을 여호와가 치심으로 아이가 병들어 죽게되었을때 다윗은 오직 금식하며 울며 기도합니다.
그전처럼 사람의 꾀에 지나지 않는 인간적 수단방법을 의지하지 않고 이레동안 울며 금식하며 기도 합니다. 삼하12:22 절을 보면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을 불쌍히 여겨 주시기 바라는 심정으로 기도한 것임을 알수 있습니다.
위기에 대처하는 방법의 차이이며 노선의 차이가 바로 자신이 하나님의 일을 대신하려 함에서
오직 긍휼을 구하고 울며 겸비하여 기도하는 다윗은 비록 이전의 죄책으로 아이는 잃었지만
다시 하나님의 잉태케 하심으로 다윗의 처를 통해 그 아들 솔로몬을 갖게 됩니다.
한가지 묘한 것은 삼하 11장27절에서는 "저가 그 처가 되어" 라고 하여 다윗이 밧세바를 처로 삼은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후에 12장 15절에는 "우리아의 처" 로 나오다가 울며 금식하고 긍휼을 구한 이후에 12장24절에는 다윗의 처로 나오는 점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잉태의 시점이 우리아의 처 였을때 였기에 우리아의 처로 나오는 것이고 다윗의 회개이후에 다윗의 처로 보아주시는 관점으로 저는 읽힙니다.
같은 사람이지만 하나님이 보시는 관점에서는 회개 이전과 회개 이후에 신분이 다른 것으로 나오는 것으로 밖에는 해석이 안됩니다.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에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이 그 사람은 같은 사람이지만 다른 존재 다른 신분으로 보아주시는 기록상의 근거로 볼때 우리가 차라리 가슴을 찢고 울며 회개하여 자신의 본질적 죄성 자체를 드러내어 긍휼을 구하는 이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충분히 유추해 볼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한 사람이 사람의 수단방법을 의지하던 옜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긍휼만을 구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를 아래의 말씀이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미련한 자를 곡물과 함께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을찌라도 그의 미련은 벗어지지 아니하느니라"(잠 27:22)
회개함과 자복함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긍휼로만 살겠다는 결심은 그리 쉬운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모든일에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은 성령을 주시고 우리에게 징계를 아끼지 아니하심으로
그리스도의 거룩한 보혈의 그 은혜를 얻도록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가 넘치고 찬양이 넘치는지요.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눅18:14)
이 모든 약속의 근거를 주시고 긍휼을 얻는길은
오직 예수께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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