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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와 생명의 증거

[스크랩] 그리스도의 생명의 내적 인식....

 

 

그리스도의 생명의 내적 인식....

 

우리가 하나님을 내적으로 얼마나 인식하는가에 따라 하나님을 얻으며 그분을 생명으로 체험하게 된다. 그러므로 인식은 생명의 자람과 절대적인 관계가 있다. 우리가 생명을 인식하고 생명의 자람을 가지려면 내적 인식을 자세히 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사람이 그분을 알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에 사람에게 힘을 다하여 그 분을 추구하며 인식하라고 하셨다(6:6,3). 신약에서 그분이 이루신 모든 것은 우리로 그분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다(8:10-11). 그분이 우리를 거듭나게 할 때, 그분의 생명의 함유된 그분의 영은 우리 안에 들어와서 우리로 하여금 내적으로 그분을 인식하는 기능을 갖게 하셨다. 이러한 인식은 한 면으로 우리 안에 생명의 자람에 따라 점차적으로 증가하고 또 한 면으로는 우리 안의 생명을 자라게 한다.

 

하나님이 그분의 생명을 이미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알 수 있다. 그분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자랄수록 우리는 그분을 더욱 알 수 있게 된다. 동시에 우리가 그분을 알수록 우리는 그분을 우리의 생명으로 취하고 그분을 더욱 많이 체험하고 누리며 그분을 살아 나타낼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영적인 생명의 자람은 다 하나님에 대한우리의 인식에 달려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헤와 계시의 영을 주사 참으로 그분을 알게 하시고(1:17), 우리로 하나님을 앎으로 말미암아 자라나게 하시기를(1:10하 원문 참조) 바란다.

 

하나님에 대한 세단계의 인식

 

시편 1037절은 그 법칙을 모세에게, 그 행사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리셨도다 라고 말한다.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인식한 것은 하나님의 행사이고 모세가 인식한 것은 하나님의 법칙인 것을 말해준다. 히브리서 810, 11절은 내법을 너희 속에 두고.....저희가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고 말한다. 이것은 신약 안에서 내적인 율법을 얻은 사람은 하나님 자신을 알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 두 군데의 성경구절은, 사람이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첮째로, 하나님의 행사를 인식하는 것과 둘째로, 하나님의 법칙을 인식하는 것과 셋째로, 하나님 자신을 인식하는 세담계로 나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행사와 역사로 하나님의 행사를 알 수 있음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애굽에서 하나님이 애굽 사람을 치기 위해 그들에게 내린 열 가지 재앙을 보았고, 홍해의 해변에서 하나님이 그들로 안전히 걸어가도록 바다를 갈라지게 하신 것과 광야에서 그들의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이 반석으로부터 생수가 흐르게 하신 것과 매일 하늘로부터 그들을 먹이는 만나를 내리신 것을 보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러한 기적과 기사들을 봄으로써 하나님의 행사를 알았다. 또 예를 들면, 사람들은 주 예수님의 행하신 것들,곧 오병 이어로 오천명을 배불리 먹이신 것과 바람과 바다를 잠잠케 하신 것과 병을 치료하시고 귀신을 쫒아내신 것과 죽은 자를 살리신 것 등 기적과 기사를 봄으로써 주님의 행사를 인식했다.

 

또한 우리가 병에서 하나님의 치료를 받는 것이나 위험을 만났을 때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것이나 궁핍할 때 하나님의 공급을받는 등등의 이야기들도 우리로 하나님의 행사를 인식하게 한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행사를 인식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첫 번째 단계의 인식이다. 이렇한 단계의 인식은 하나님의 행사를 보고서야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에 얕고 표면적인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하시는 원칙을 가리킨다. 아브라함이 소돔을 위하여 간구했을 때, 그는 하나님이 의로우신 분임을 알았고 그분의 행위가 결코 그분의 공의에 어긋날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공의를 쫒아 하나님께 간구했었다(18:23-32). 이는 그가 하나님이 일하시는 법칙을 알았던 것이다 또 예를 들면, 고라당이 배역으로 멸망당한 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전히 원망할 때 모세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난 것을 보고 아론에게 ,이르 너는 향로를 취하고 단의 불을 그것을 담고 그 위에 향을 두어 가지고 급히 회중에게가서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라 여호와께서 진노하셨으므로 염병이 시작었느니라(16:46)고 말했다.

 

이것은 모세가 하나님의 법칙, 곧 사람이 어떻게 행동할 때 하나님이 어떻게 반응하시는가를 알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사무엘이 사울에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 15:22)라고 말한 것과 다윗이 값없이는 내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 하나라(삼하 24:24).고 말한 것도 그들이 하나님의 법칙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전파할 때 그것이 결코 헛되이 되지 아니하고 주님의 기쁘신 일을 이루심(55:10)을 믿고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T를 뿌리면 성령으로 영생을 거둘 것(6:8)을 아는 것은 우릭 하나님의 법칙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일하시는 법칙을 인식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두 번째 단계의 인식을 갖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역사를 완성하기 전에 그분이 무엇을 하실 것과 어떻게 하실 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의 행사를 인식하는 것보다 더욱 진보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인식은 우리에게 기도의 믿음을 더하며 하나님의 치리를 받게 한다. 이런 인식은 상당히 좋은 것이나 아직은 충분히 깊지는 못하며 내적인 것이 아니다.

 

셋째 단계-하나님 자신을 인식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가 거듭남으로 하나님의 생명을 갖게 될 때 하나님의 성품도 갖게 된다. 우리는 우린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성품을 만질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을 만지는 것은 하나님 자신을 만지는 것이며 하나님 자신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외적으로 하나님의 행사와 법칙을 인식하는 앞에 두 단계의 인식과는 달리 내적으로 하나님 자신을 인식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난치병을 앓는 어느 형제가 하나님의 치료를 받았다면 그는 아주 기뻐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분은 진실로 나를 돌아 보셨습니다 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 형제는 하나님의 행사에 대하여 약간의 인식을 갖게 된다, 후에 그는 또 병을 앓았다. 이번에 그는 병든 원인이 자기의 잘못으로 인한 하나님의 징벌과 다스림인줄 알았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잘못을 처리하게 되었다. 처리를 받은 후 그 형제는 하나님이 그를 치료하실 것을 알았고(고전 11:30), 결국 하나님은 진실로 그를 치료하셨다.

 

그러나 그 형제는 하나님의 치료를 받기 전에하나님이 그를 치료하실 것을 알았다. 이는 그가 하나님의 법칙을 안 때문이다 이 때 그의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진보-하나님의 행살르 인식하는데서 하남님의 법칙을 인식하는 데로-하였지만 외면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들을 가졌을 뿐 내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주관적인 인식을 가진 것이 아니다. 후에 그는 속에서 자신에게 있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에 맞지 않는 몇 가지 일들을 처리하고 제거해야 한다고 느낄 것이다 그의 이런 느낌과 인식은 그의 밖의 어떤 것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이 준 것이다.

 

그러므로 이전에 그는 하나님을 내적으로 인식하고 하나님에 대한 주관적인 인식을 갖게 될 것이다. 또 예를 들면, 어느 형제는 최초에 심각한 문제를 만났을 때 기도로 하나님이 그 문제를 통과하게 하시므로 하나님의 행사를 알게 된다. 후에 그는 어떤 어려움을 당할 때 자신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 것을 안다. 이것은 그가 하나님의 법칙을 인식한 것이다. 최종적으로 그가 또 다시 어려움을 당할 때 그는 속에서 하나님이 그로 통과하게 하실 것이라는 기묘한 느낌을 갖게 된다.

 

이러한 느낌과 인식은 밖에서 하나님의 행사를 보거나 하나님의 일하시는 원칙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라 속에서 하나님 자신을 만짐으로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최고로 높고 깊은 이면적 인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구약시대에는 사람들에게 그분의 행사를 나타내고 그분의 법칙만을 게시하였기 때문에 그 당시의 사람들은 기껏해야 하나님의 행사와 하나님의 법칙을 인식하는, 앞의 두 가지인식을 가질 수밖에 없었음을 볼 수 있다.

 

신약시대에 와서 우리도 응당 하나님의 행사와 법칙을 인식해야 하겠지만 가장 중요하고 영광스러운 것은 하나님이 그분의 영 안에서 친히 우리의 생명으로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우리가 안에서 그분 자신을 직접 만지고 그분 자신을 인식하는 하나님에 대한 셋째 단계의 인식은 신약시대에 구원받은 우리들이 소유한 특별한 축복이다.

 

하나님에 대한 두 가지 인식

 

하나님의 대한 인식을 세 단계로 나눌 수 있지만 귀납하면 외적인 인식과 내적인 인식의 두 가지 인식뿐이다. 하나님의 행사와 하나님의 법칙을 인식하는 것은 다 외적인 인식이다. 이 두 단계의 인식에는 깊고 낮음의 차이가 있으나 그것들은 우리 밖에 있는 하나님의 행사나 법칙으로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이므로 다 객관적인 것이고 외면적인 것이다. 반면에 하나님 자신을 인식하는 것은 내면적인 인식이다.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으로 하나니;a 자신을 만지는 것이므로 하나님에 대한 주관적이고 내적인 인식이다.

 

내적인 인식과 외적인 인식은 성명원문에서도 두 개의 단어로 언급되었다. 히브리서 811절에서 우리가 하나님 아는 것을 언급할 때 두 번이나 말한 앎은 원무에서 서로 다른 두 단어이고 그 의미에도 구분이 있다. 전자는 사람의 가르침이 필요한 우리 밖의 통상적인 인식을 가리키고 후자는 사람의 가르침이 필요하지 않은 우리 속에 느낌의 인식을 가리킨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밖의 인식과 속의 인식이 확실히 다름을 우리로 알게 한다.

 

예를 들어 희고 고운 설탕과 희고 고운 소금을 한곳에 둘 때 겉으로는 다 희고 고우므로 별 차이가 없어 다른 사람이 얼려 주어야 어떤 것이 설탕이고 어떤 것이 소금인지를 알 수 있다. 이것은 사람의 가르침에 대한 인식으로서 외면적이고 객관적이고 통상적인 것이며 잘못된 인식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그것을 맛본다면 즉시 어떤 것이 설탕이고 소금인지를 알고 그 둘의 차이가 너무 크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은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알려줄 필요 없이 맛을 보기만 해도 알게 된다. 이것은 내적인 느낌으로 인한 인식으로서 이면적이고 주관적이며 느낄 수 있고 정확한 것이다.

 

이와 같이 언제든지 우리 속에서 하나님을 맛봄으로 그 기쁨과 달콤한 맛을 아는 것은 참으로 밖에서 하나님의 행사나 법칙에 의해 하나님을 앎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편 348절은 너희는 .....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맛볼 수 있는 분이심을 감사하자! 히브리서 64절부터 5절까지는 또한,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 ...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라고 말한다. 이는 하나님을 맛볼 수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영적인 것들도 맛볼 수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 맛봄은 우리 속에 인식을 갖게 한다. 우리가 하나님게 속한 것들을 맛볼 때 우리에게는 자연히 사람이 가르칠 필요 없이 우리 속에 느낌에서 나온 정확한 인식이 있게 된다. 이것은 신약 하에 있는 영광스러운 축복이다.

출처 : 베다니사랑과 복음- 평신도 교회
글쓴이 : 본향그리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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