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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의 믿음의 의미

[스크랩] 롯의 믿음(11)

롯의 믿음(11)

 

<창19:4~8> 그들이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롯이 문 밖의 무리에게로 나가서 뒤로 문을 닫고 이르되 청하노니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

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하건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

 

위의 본문은 롯의 믿음 전모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소돔의 악한 자들이 와서 하나님이 보낸 두 천사를 해하려 할 때에 자신의 두 딸을 대신 내어줄테니 맘대로 요리 하라는 발상은 어디에서 나온 사상인가? 가족에게 위기가 생기면 우선 가장이 목숨을 걸고 지킬 일이고, 정 안되겠다 싶으면 천사들과 상의 할 일이지, 어찌 두 딸을 비류들에게 그리 쉽게 내어준다는 말인가?

 

이미 앞서서 기술한 바가 있지만, 롯은 목자며 딸들은 양을 비유한다.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제 목숨을 버리지만, 거짓 목자는 이리를 보고 도망친다고 했다. 삯군은 실상 목자가 아니었으며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면 도망친다는 것이다(요10:12). 아니, 양의 옷을 입은 노략질하는 이리요 거짓선지자다. 이들이 양을 치는 목적은 자기의 배를 채우려고 이용물로 삼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하나님의 천사를 위한다는 생각으로 자기 딸을 희생시키는 것은, 얼핏 보면 대단한 신앙처럼 보이나 전적으로 인본주의의 산물이다. 통상적으로 사람은 하나님을 위한다고 열심을 낸다. 주님도 이것을 정확하게 지적하셨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올라가시는 주님을 보며 우는 부녀들을 향해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와 너희 자녀들을 위해 울라”고 하셨다. 신이 무엇이 부족해서 인간에게 도움을 받을까? 언제나 하나님은 사람에게 베푸시는 분이시다.

 

롯은 하나님의 사자에게 먼저 물었어야 했다. 주님께 묻고 그분 뜻대로 행하는 것이 바른 믿음이다. 그러나 자기 임의로 판단하고 처리하는 옛사람 습관이 여전하기 때문에, 주의 천사를 위해 자기 열심을 낸다는 것이 결국은 두 딸(양)를 버리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그림을 보여준다. 무조건 열심만 있으면 하나님이 기쁘게 받아주시겠거니 하는 발상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는 것은 진지 지식을 모르는 무지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위한다고 했지만 힘써서 하나님을 대적한 격이다(롬10:3).

 

그러나 이들의 종교적 외식은 너무도 아름답고 화려해서 모든 사람이 속아 넘어 간다. 사람들이 누구를 평가할 때, 종교적 행위와 업적으로 점수를 매기는 성향을 사단은 잘도 이용한다. 병고침, 폭넓은 구제, 40일 금식기도, 십여 년 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은 새벽예배, 해외 선교지 개척한 업적 등등이 자랑이다. 평범을 뛰어넘는 각고의 수행을 자랑삼아 사람을 모으고, 그 힘으로 종교적 권세를 행세하는 것이 목회 출세의 수순이다. 여기에 외국박사 학력까지 곁들인다면 부흥은 시간문제다. 민중의 우상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 우상은 마구 독재를 자행해도 오히려 박수를 받는 아이러니한 ‘지하왕국’이 탄생된다.

 

솔로몬을 보지 못하는가? 다윗 왕조로부터 세습한 온갖 권세와 물력으로 전국에 걸쳐 역군을 동원하여 쉴 새 없는 각종사업과 토목공사를 강행한 것은 이시대의 종교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진행하는 온갖 종교적 이벤트와 같은 것이다. 그이 빗나간 신앙을 일천 명의 첩과 비빈을 거느린 것으로 비유되었다. 모두 이방나라와의 정략결혼으로 맞이한 아내들이다. 무엇인가? 여호와의 신과 그 밖의 (온갖 잡영)개의 신을 같이 모시는 것을 보여주지 않는가? 정신이 나간 자가 아니라면 이렇게는 못할 것이다. 다행히 솔로몬은 말년에 하나님의 은혜로 제 정신이 돌아와서 고백하기를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된 것 이었다’고 실토했다.

 

이러한 메가 처치(대형교회) 지향성은 선악과 먹은 뱀의 사상이다. 교회의 목회를 마치 회사 경영 마인드로 접근하려 한다. 교회의 덩치를 크게 확장하는 것은 비즈니스다. 여의도 어느 곳은 수많은 헌금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재테크의 일환으로 각종 회사를 창업하여 문어발 기업을 만들고 원로목사의 가족이 경영을 맡아왔다. 시간은 흐르고 교회의 창업자는 은퇴 후 매년 150억씩을 받아 왔다고 한다. 이런류의 아수라장을 성경은 소돔과 고모라라 한다.

 

이곳은 세상과 천국의 중간에 속해 있는 아리송한 세계다. 만일 세상 기업이라면, 제아무리 힘쓰는 회장이라도 횡령과 배임죄로 즉각 구속이다. 그런데 천문학적인 거금을 착복하고도 검사의 수사가 미치지 못하는 치외법적인 곳이고 보면 분명 이 세상 기업은 아닐테고..., 그렇다고 하나님의 교회는 더더욱 아니다. 세상의 일반 윤리도덕 기준보다도 못 미치기에 '지하세계'이며, 교회를 비슷하게 모방한 여기를 종교사회 혹은 ‘지하왕국’이라한다. 이름하여 소돔과 고모라다!

 

이사야 선지자의 입을 빌려 하나님은 남조 유다를 향해 일갈 하셨다. “소돔의 관원들아! 고모라의 백성들아!”(사1:10) 모세의 율법으로 종교 일색이 되어버린 퇴락한 교회는 시대를 막론하고 언제나 소돔과 고모라와 한 영이다. 주님을 십자가에 매단 종교의 본산지 예루살렘 성전이 계시록에서는 소돔이요 애굽이라 했다. 그렇다 소돔과 애굽은 사촌지간이다. 오십보백보라는 말이다. 간음의 도시인 소돔은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기는 세속화된 기독교의 상징이다.

 

그런데 롯은 소돔의 노소(장로와 청년지도자)들을 향해 형제여’라고 불렀다. 소돔의 사상과 롯의 사상의 뿌리는 한 씨에서 나왔다는 증거다. 얼마나 놀라운 말인가? 우리가 여의도 순복음 회사’를 교회라 부르지 못하는 이유가 이렇게 진리의 눈으로 영의 세계를 보기 때문이다. 소돔과 고모라의 다른 이름은 큰 성 바벨론이다. 음녀교회다. 롯의 가르침을 받은 그의 아내와 두 딸은 ‘소금기둥’이요, 간음의 자식인 모압과 암몬의 에미다. 물이 넉넉한 요단들을 소원 목적하는 교회요, 세상과 벗되고 형제가 된 짝퉁교회다.

 

이 시대의 롯의 아내와 딸들은 또 누구인가? 로마 천주교라는 큰 음녀와 개신교라는 작은 음녀가 형성한 기독교는 벧엘(하나님의 집)이 아니라, 마귀의 처소가 된 벧아웬이다. 은 누구를 말하는가? 그곳 상좌에서 또아리를 틀고 앉아 하나님으로 떠 받들려있는 우상들이 롯이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소돔과 고모라를 삼켰듯이, 큰 성 바벨론은 이미 창수와 바람에 부딪쳐서 기둥뿌리부터 녹아들기 시작했다.

 

<계18:2> 힘찬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소돔, 그곳에서 두 천사의 음성이 들리는 자 있는가?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창19:17)는 외침은 지금도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음녀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녀의 받을 재앙을 받지 말라”(계18:4).

 

하나님과 세상을 짝하여 섬기는 간음의 도시, 기독교에서 나오라는 두 증인의 나팔소리는 때와 기한이 정해져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분명히 이 음성이 들릴 것이다. 늦기 전에 도망쳐 나오되,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미련 없이 나오시라!!

출처 : 베다니사랑과 복음- 평신도 교회
글쓴이 : 하늘향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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