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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찬미

[스크랩] 가로등 마음 /겸향 이병한

 

 

 

 

가로등 마음 /겸향 이병한

 

 

 

1. 인공위성사진을 보면 남한은 환한 불빛이 밝혀지고 있는 반면 북한은 어둠속에 묻혀있습니다. 이것이 북한의 전력사정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들의 사상에 발전을 저해하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가장 중요한 문제점은 공정한 분배는 있는지 몰라도 개인의 창조적 동기를 부여하지 못한다는데 있습니다. 무엇인가 자유가 주어지고 개인들이나 혹은 단체가 이익을 창출 할 수 있도록 보장만 된다면 북한도 몰라보게 발전 했을 것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최근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에서 발표한 연구보고서 ‘북한 자원 잠재적 가치 높다’에 의하면, 북한은 국토의 약 80%에 광물자원이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어 총 매장량의 잠재가치가 남한의 약 24배에 이르는 6천984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빈곤하게 사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적극적인 동기 부여를 닫고 있기 때문입니다.

 

2. 도시의 곳곳에 세워진 가로등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가로등의 빛의 용량만큼 어둠은 저만치 물러나 있게 됩니다. 빛과 어둠의 관계에서 어둠은 빛의 상대가 되질 못합니다. 빛이 자신의 밝기를 포기한다면 몰라도 끝까지 그 빛의 밝기를 유지 한다면 어둠은 빛 앞에서 힘을 잃게 마련입니다. 당신이 밤늦게 퇴근 할 때 그 길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가로등의 존재를 생각하신 적이 있습니까? 아마도 거기서 매일 빛을 비추고 있어서 무심코 지나가기 때문에 그것의 고마움을 잊고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신이 어쩌다 한 번 그 앞을 지나간다 해도 가로등은 서운해 하지도 않습니다. 아마 바빠서 그 앞을 지나가지도 않을 수도 있지만 가로등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빛을 발산하고 있었습니다.

 

3. 아니 당신이 그 자리에 지나가건 아니가든 상관없이 그곳을 비추고 있어야 합니다. 그곳을 어둡게 하면 누군가 어둠을 틈타서 어둠의 일을 꾸밀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전국적으로 강력범죄가 일어나고 있는 장소를 분석해 보니까 가로등이 없는 어두운 골목길 외진 곳 인적이 뜸한 곳에서 많이 발생한다는 연구 자료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은 범죄를 저지르는 모든 사람들은 빛을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하는 모든 일이 어둠의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어둠 속에서 얼마나 비참한 일들을 경험 하고 있을까요? 그러나 원망은 하지 못합니다. 그 어둠에 들어가기 전에 자신이 동의하는 절차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4. 빛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특별히 당신이 어떤 것을 하지 않아도 그 존재만으로 다른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게 억제하는 효과를 나타내게 되는 것입니다. 당신이 만약 어둠을 향하여 당신의 존재를 알려 보십시오. 어둠을 증오하고 싫어하다고 말입니다. 그러면 어둠은 당신 앞에서 사시나무 떨듯이 사족을 못 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빛을 드러내기만 해도 어둠은 저만치 물러가서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됩니다. 만약 지하철 안에서 누군가가 부당하게 폭력을 당하게 된다면 그 폭력을 무서워하지 말고 그의 부당함을 말해보십시오. 어둠은 여러 사람들의 빛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들에서 풀어진 개를 만나면 절대 등을 보이면 안 됩니다. 두 눈을 부릅뜨고 개하고 맞서야 합니다. 그러면 개는 사람의 강한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꼬리를 내리게 됩니다. 어둠이란 것도 바로 이런 것입니다. 빛이 적극적인 자신의 정체성을 보이면 어둠은 견디지 못하고 꼬리를 내리게 됩니다.

 

5. 그런데도 많은 경우에 빛이 어둠을 두려워하는 부분들이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어둠의 협박에 무릎을 꿇게 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지요. 그만큼 빛들이 자신감 회복이 안 된 상태입니다. 빛이란 착함과 의로움을 지향하는 마음입니다. 이 빛으로 상대편의 양심을 자극해주면 그는 곧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게 됩니다. 빛이 오면 어둠이 물러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빛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도시의 밤거리를 어둠에게 내어준 것은 곳곳에 세워진 가로등이 제 빛을 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만약 어둠의 일을 증오하고 미워한다고 표현 했다면 당신의 소속이 빛이 되길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빛의 정체성은 어둠을 거부하는 정서로부터 출발 하는 것이지요.

 

6. 모든 사람이 다 어둠을 거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둠의 유혹을 거부하는 것만으로도 거룩한 정서로 나갈 준비가 충분합니다. 인격적 결정이 보장되는 상황에서는 그 사람이 원하는 쪽으로 정서가 형성되게 됩니다. 그러니까 어둠을 거부 하는 것만으로도 어둠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어둠을 거부하지 못하고 끌려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하기 어려운 말이 예와 아니오 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거부의사를 분명하게 나타내야만 자신의 정체성으로 나갈 수 있는데 그게 안 된다고 말합니다. 지금도 자기 의사와는 관계없이 끌려가서 어둠의 종노릇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한 번 어둠에 발을 디디면 빠져 나오기가 어렵습니다. 처음에 들어가기 전에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밝혀야 합니다.

 

7. 상황이 이러하기 때문에 우리는 자기 스스로 어둠에 대한 면역성을 강화하기 위해서 예방백신을 맞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방백신이란 내 마음에 빛을 받아들여 거기에 젖어드는 과정을 말합니다. 내가 적극적으로 빛을 좋아하지 않으면 그 결과로 어둠이 사방에서 나를 에워싸게 됩니다. 북한이 어둠에 묻혀있는 것은 적극적인 동기부여를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둠이란 선한동기에 무관심한 결과로 나타난 현상입니다. “깨진 유리창 이론은 미국 범죄학에서 연구되어 정리된 법칙으로서, 도시의 슬럼화가 어떻게 발생하는가에 대한 원리를 말한다. 깨진 유리창을 방치해 두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점점 슬럼화가 진행되기 시작한다는 이론이다. 깨진 유리창 법칙이란, 경찰 범죄학에서 먼저 나온 학문으로 유리창이 깨진 집에 도둑 맞을 확률이 훨씬 더 높다는 것이다.” (깨진 유리창 법칙(Broken Window) - 마이클 레빈/ 김민주 옮김 )우리는 적극적으로 빛에 소속되기 위해 선한 일에 노크할 필요가 있습니다.

 

8. 진리란 가로등과 같은 존재입니다. 밤을 밝히며 누가 알아주든 그렇지 않든 상관하지 않고 어둠과 맞서있는 존재를 말하는 것입니다. 빛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보이게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나의 가족이 보이고 이웃도 보이고 수많은 관계의 소중함이 보이고 내가 꼭 해야 할 역할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어둠속에 있을 때는 오직 나 자신만 보이고 나만 즐거우면 그만 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진리란 어떤 특정한 자들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평범하게 우리 삶의 현장에 가로등과 같은 존재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진리와 사귀겠다는 생각만 해도 마음이 환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9. 진리는 당신에게 아름답고 선한 동기를 부여해주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빛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겨 보세요. 거기에 참된 기쁨과 만족이 있습니다. 행복은 소유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를 사귐이 이루어지면 행복을 얻기 위해 수고할 필요가 없습니다. 진리는 항상 나에게 존재적 기쁨을 누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신에게도 적극적인 선한 동기가 필요합니다.

 

 

 


 

 

출처 : 베다니사랑과 복음- 평신도 교회
글쓴이 : 본향그리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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