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위에 떠오른 도끼를 취하십시오.
성경 열왕기 하 6장 1절에서 7절에 일어난 사건을 보면 흡사 옛날 전래동화에 나오는 금도끼 은도끼처럼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무리 비슷한 얘기라고 할지라도 성경과 동일시 여겨서는 안 된다. 이 내용에서 참다운 의미를 깨닫는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이 잘못되어 있음을 직감할 것이다.
본문의 내용은 엘리사와 선지생도가 함께 거하는 처소가 협소가 더 넓은 장소인 요단으로 가서 처소를 세우기 위해를 나무를 베는데 한 선지 생도가 빌려 온 도끼로 나무를 베다가 도끼 날을 그만 물에 빠뜨렸는데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던져서 도끼를 떠오르게 하여 그 생도에게 준 사건이다.
엘리사와 선지생도가 함께 거하는 장소가 협소하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눈에 보이는 성장을 해도 장소가 협소하면 더 넓은 장소로 옮기는 것이 마땅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눈에 보이지 않는 성장을 해도 장소를 옮기는 것이 당연하다. 장소를 옮기는 것은 좁기 때문인데 ‘샤르’라는 단어가 좁고 꽉 낀다는 외에도 “고통, 고생, 곤궁, 압제자, 원수” 등의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다.
율법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고통을 따르게 마련이며 곤궁함이 임하여 행동하기가 여유롭지 못함을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신앙생활이 너무나 꽉 끼어있는 느낌을 받을 때가 바로 장소를 옮겨 떠나야 할 때가 된 것을 의미한다. 즉 율법적인 세상에서 복음적인 세상으로 옮겨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율법 아래 압제자인 사단의 종노릇하면서 고통 속에서 살다보면 견딜 만큼 견디다가 법에 눌리고 찌들어 지치게 마련이다. 율법 아래에서의 사는 신앙생활은 갈등과 갈급함이 증폭되어 요단으로 가서 새로운 처소를 만들기 원하는 것이 영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기존자리가 좁아서 더 넓은 곳으로 옮겨가기를 원하면 과감하게 옮겨야 한다.
한국교회가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외쳐왔는데 그 다음의 단계인 길을 만들어 주지 못하고 길 없는 곳에서 성도들을 이리저리 헤매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율법 아래서 고통으로 인해 갈등과 갈급함을 갖도록 헤매게 했는지도 모른다. 이제 한국교회는 요단으로 옮겨야 하는 시대가 왔다.
나무를 베는 도끼는 말씀을 의미하며 나무는 집을 지을 때 필요한 재목으로서 사람을 나무로 비유할 이 시대에 필요한 인재를 의미한다. 재목으로 쓸 수 없는 잘라서 불쏘시개에 불과하지만 좋은 나무는 잘라서 집의 기둥이나 석가래, 기타 여러 군데 다양하게 사용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빌려온 도끼로 나무를 베어서 처소를 짓는다는 의미는 구원하는 말씀에 의하여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자는 심판하며, 기준에 합한 사람들을 구원하여 교회를 구성하는 한 지체가 되게 하며 이웃을 구원하기 위해 말씀을 전파하는 차원이다. 여기서 빌려온 도끼 즉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차원에서 빌려온 말씀이 된다.
빌려온 말씀이란 듣고 깨달은 말씀이 체험을 통해서 자기의 것이 되지 못하고 자기 머릿속의 지식과 이성으로 머물러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오늘날 목회자들이 내게 확신과 결단을 불러일으킨 말씀이 아니라 남의 설교를 도용하거나 짜깁기하여 내 것인 양 설교를 하고 있는데 죄송하지만 빌려온 도끼에 불과하다.
과거 목회할 때 설교를 해서 교인들이 은혜를 받았다고 하지만 어찌 내 설교도 아니며 남의 설교도 아닌 것을 느껴 진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설교가 무엇이며 어떤 것입니까? 질문에 받은 응답이 원래대로 가라는 말씀을 토대로 원어성경과 참고서를 구입해서 열심히 공부했지만 원형과 본질을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 공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원어의 해석과 문법만 터득하면 되는 줄 알았다. 원어 속에 감춰진 엄청난 비밀은 너무나 깊이 숨겨져 있었다. 말씀이 자신의 것이 되지 않은 사람의 말씀은 당연히 율법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하는 기도, 사랑이 노력으로 해도 안 되는 것은 율법적으로 하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다.
빌려온 도끼가 쉽게 다루어지지 않아서 물에 빠트린 이유가 바로 내 손에 자유자재로 사용되어 지지 않기 때문이다. 도끼자루에서 도끼머리가 빠지는 것은 말씀을 적용하기만 하면 인간의 이성과 판단으로 얻어지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말씀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왜 하필 물에 빠지는 것일까? 물이 없는 곳에서 나무를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열심히 나무를 하기 위해 도끼질을 했지만 도끼날이 물에 빠지고 난 뒤에야 빌려온 도 끼인 줄 알았던 것이다. 빌려온 말씀을 빌려온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며 열심히 말씀대로 살려고 적용했지만 노력하면 할수록 한계에 부딪혀 수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딜레마에 빠지고 만다.
안 그런 척할 뿐이다. 율법 아래서 한계상황에 도달하여 탕자의 체험을 하게 되면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와야 한다, 참다운 예수, 영적 엘리사를 만나야 한다. 그런데 아직도 돼지와 함께 쥐엄 열매를 먹으며 자신의 집으로 되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실정이다. 아니 빌려온 도끼날이 이미 물에 빠진 줄도 모르고 헛 도끼질을 하고 있는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엘리사가 생도의 탄식을 듣고 도끼가 빠진 곳에 나뭇가지 베어 던지는데 나뭇가지는 십자가를 의미한다.(갈 3:13) 출애굽기 15:25에도 홍해를 건넌 후 마라의 순 물을 만났을 때도 하나님께서 지시한 나무(십자가)를 물 위에 던져 쓴 물이 단 물로 바뀐 역사를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십자가의 진리를 모르고 홍해를 건너거나 광야를 지나간다면 너무나 무의미한 것이다. 빌려온 인생이 아니라 진정 자신이 누려야 하는 인생을 가져야 한다. 주님과 한 몸이 되어 연합된 지체로서의 삶을 누려야 한다. 십자가와 함께 하지 않는 말씀과 노정이 된다면 하나님을 믿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달리고 함께 죽어야만 빌려온 말씀이 머릿속의 지식과 판단으로 똘똘 뭉쳐진 생각에 머물러 있지 않고 예수와 함께 하나가 되어 마음에 새겨지는 말씀으로 바뀐다. 잠언 26:9에 보면 “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은 술 취한 자의 손에 든 가시나무 같으니라.”고 된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모른다면 말씀을 다시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금식을 하거나 철야를 하며 특별기도에 들어가는데 그런 노력을 의미하지 않는다. 세미나에 참석하거나 대학원에 입학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또한 어떤 해석이 잘 되어 있는 책을 구입해서 보는 차원도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 없다는 것은 사람의 이성과 판단을 수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뭇가지를 도끼가 빠진 곳에 던졌더니 물 아래로 까라 앉은 도끼가 물 위에 떠올랐다 는 의미는 무엇일까? 빌려온 도끼 즉 하나님의 말씀을 주님과 함께 한 몸이 경험하지 않으면 이것이 주님과 함께 하는 엄청난 경험이 바로 고난이라는 차원이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자신의 말씀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부활하는 것이 바로 물에 빠진 도끼가 물 위에 다시 떠오르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의 상식과 이성으로는 도저히 물에 빠진 도끼가 물 위에 떠오를 수 없는 것이다. 만약에 그런 사건이 일어났다면 세계 뉴스에 톱 뉴스감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아직도 율법 아래서 빌려온 도끼를 자기 것으로 착각하며 신앙 생활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 술 취한 사람처럼 휘두르고 다니지만 도끼머리가 빠진 줄도 모르고 헛방질만 하고 있다. 그 원인을 깨달을 때가 오게 되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앞으로 나와야 한다. 영적인 스승인 엘리사로부터 십자가로 나아가는 길에 도달해야 한다.
십자가 위에서 온전한 구원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면 물에 가라앉은 도끼가 물 위로 떠오르게 된다. 빙산의 일각이 되어 잠겨있는 부분이 떠올라 말씀의 실체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 도끼로 나무를 잘라 기둥도 세우고 지붕도 얹으며 문틀과 창문도 만들어 처소를 마련해야 한다.
믿음만 외치지 말라. 믿음의 실체를 만나고 보여줘야 한다. 허상만 보여주지 말고 실제로 내가 만난 그 분을 소개해야 한다. 물에 빠진 도끼 때문에 안타까워하지 말고 물 위에 떠오를 수 있도록 내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뭇가지인 십자가를 물 위에 던져 도끼가 떠올라 실체를 경험해야 한다.
물 떠오른 도끼를 취해야 한다. 그 도끼로 나무를 잘라야 한다. 잘못된 나무 사용할 수 없는 나무를 잘라서 불태워버리고 좋은 나무를 골라서 재목으로 사용해야 한다. 이제 빌려온 도끼를 사용하지 말라. 그 도끼로는 나무를 제대로 잘라 낼 수가 없다. 나만이 사용할 수 있는 도끼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습니다~~
우리안에 십자가를 통과하여 죽음과 부활을 거친 생명되고 능력된 말씀 도끼를 사용할때
그 말씀이 성령의 말씀으로 배에서 흐르는 생수의 말씀으로 증거되어
영혼을 살리고 온전케 하며 성전에 건축 재료가 되어 새 예루살렘 성전으로 나타날것입니다......
모셔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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