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 3:9]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필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고 나서 느낀 건 ‘이 놀랍고 신비한 일을 누가 알아들을 수 있으며, 이걸 어떻게 표현하고 전할 수 있을까’라는 겁니다. 인간의 이성이나 감성으로 분별하거나 해석하는 수준이 아닌, 인간의 사고로 수긍하고 이해하고 납득하는 범위를 훨씬 벗어난 영역, 아니 말로 표현이 안 되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고후12:1)” 전제하면서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고후12:4)”고 합니다.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은혜의 열어주심으로 인해 세 번째 성전으로서의 하늘이 된 나, 그 안으로 찾아오신 ‘흐레마’의 하나님과 하나 되었다는 얘기, 스스로 있는 자가 되었다는 얘기,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얘기라 어떻게 전해야 할지 그걸 옮기질 못하겠다는 겁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말미암아 진리의 말씀을 알게 되면 종교화된 장로들의 유전과 전통, 교리, 학문, 학설, 논문이 복음으로의 길을 가로막고 있다는 게 훤히 보입니다. 그 안에 거한 이들은 자신의 죄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맹인이 맹인에 인도되어 집단적으로 낭떠러지로 가는 게 보여 안타까운 마음에 “이건 복음이 아닌 가짜야!”하고 절규하지만 도리어 이상하게 봅니다.
꽤 친분 있는 이에게 “성경은 결코 윤리 도덕적인 얘기가 아닙니다. 술 끊고 담배 끊고 집에 일찍 들어가고 자녀들과 많은 시간을 갖고 아내와 다투지 않는 수준을 가지고 새 사람이 되었다 하질 않습니다. 마음의 할례, 그리스도의 할례로 육의 몸을 벗는 것(골2:11), 육의 몸으로 심고, 육의 몸으로 죽고 신령한 몸으로, 영의 몸으로 다시 살아나는(고전15:44) 게 새 사람입니다” 하고 전하지만 안타깝게도 연락마저 끊습니다.
흔히 사람들이 “어느 교회 다닙니까?”하고 묻습니다. 그러면 “○○○교회 다닙니다”하고 대답합니다. 교회에 나가지 않으면, 교회에 다니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는 인식이 깔려있는 겁니다. 단언하거니와 ‘나가야 할 교회, 다녀야 할 교회’가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그리스도를 만나기 어렵습니다. 자신이 교회이고 성전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서는 성경을 보면서 “이게 뭐지?, 저건 뭘까?” 하는 정도의 단순한 궁금증이 아니라 진정으로 알고 싶어 하는 마음, 처절한 몸부림이 있어야 합니다. 매일 대하는 육신의 음식을 통해 정말 먹어야 하는 하늘의 양식이 있다는 걸 알고 그것을 구하고 찾고 그 생명의 문을 두드리는 자는 부활로, 새 사람으로 살아나게 하십니다.
본문, 옛 사람과 새 사람의 차이는 말에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이신 하나님의 말이 있는 자는 새 사람이고 그 말이 없는 자는 옛 사람입니다. 예수께서도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요8:37)” 하셨던바 너희 안에 ‘호 로고스’라는 진리로서의 생명의 말이 없다는 얘깁니다.
‘거짓말을 하지 말라’에서 ‘거짓말’이 담고 있는 의미는 인간 자체가 가짜 생명이라는 겁니다. 가짜 생명이 말하는 건 모두가 다 거짓말입니다. 생각하는 것도 거짓말, 눈을 깜빡이는 것도 거짓말, 심지어 숨 쉬는 것도 거짓말이 됩니다. 그러니까 인간 자신이 살아있다고 생각하여 행하는 모든 것을 버리라, 육의 몸이라는 거짓의 옷, 옛 사람을 벗으라는 뜻입니다.
생명 없는 가짜, 영의 귀와 눈이 없는 가짜가 어떻게 ‘호 로고스’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으며, 행하라는 그게 무엇인 줄 알기나 할까요?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하라, 하지 말라”는 말씀이 주어지면 주구장창 자신이 직접 행동으로 이루어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합니다. 영의 귀와 눈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짓말 하지 말라’를 육적 수준으로 끌어내려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사기 치지 말라’ 정도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복음 안으로 들어오면 “말씀이신 하나님이 인간은 형체가 없고(토후), 텅 비었고(보후), 어두운 흑암(호쉐크)이라 하셨지. 거짓말 하지 말라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거짓말 하지 않게 해 주시겠구나”로 알아듣습니다. 여기에서 새 사람을 입는 다는 건 내 마음 안으로 임하는 말씀의 영의 섬기심을 받아 말씀이신 하나님과 똑 같은 진리의 형상으로 세워져, 나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 진리만을 말하는 말씀이신 하나님의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사 48:6] 네가 들었으니 이 모든 것을 보라 너희가 선전하지 아니하겠느냐 이제부터 내가 새 일 곧 네가 알지 못하던 은비한 일을 네게 듣게 하노니
들었다는 건 하나님의 영인 말씀이 임했다는 뜻입니다. 육신의 눈과 귀로는 결코 알 수 없는 말씀의 의미를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로고스 안에 담겨진 흐레마의 말씀, 생명으로서의 진리를 알게 되었으니 이 놀라운 일을 너희가 전하여 알게 하지 않겠느냐, 그렇게 하기 위하여, 네가 전에 알지 못하던, 볼 수 없었던 것을 밝히 드러내어 보이게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사 50:4]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모두가 하나님 이름을 부르고 있는 것 같지만 진정으로 진리의 하나님을 알고 싶어 하는 누군가를 인도하여 듣게 하시거나 말씀 맡은 자를 이끌어 궁금해 하는 이에게로 이끌어 가십니다. 가끔은 복음이 전해지는 걸 듣고 “이게 무슨 얘기야?”며 궁금해 하는 이들, 건물 교회에서 ‘이건 아닌데...’하며 종교생활에 염증을 느낀 자들이 복음 안으로 들어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성경은 윤리 도덕과 양심을 속이지 않도록 권장하는 지표이거나 고매하고 그윽한 인품을 만들고 인간의 노력과 열심을 동원하여 수준 높은 수련을 거듭한 끝에 창조주의 마음에 쏙 드는 착하디착한 인간을 배양하기 위한 책이 아닙니다. 오히려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인간의 면모가 주님에 의해 철저하게 털리고 해부 당함으로써 동물적인 인간의 치부가 여실히 드러나게 하는 책이 성경입니다.
내 마음 밑바닥에 가라앉아 도사리고 있는 인성(人性)이라는 앙금, 휘저으면 금방 드러나는 추악한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폭로 당하는 게 은혜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나는 이런 소인배야”하고 고백하여 묵사발 되라는 게 아닙니다. 나 자신에게는 자가 발전의 생명이 없다는 것, 인간의 생명은 가짜라는 게 온전히 드러나야 한다는 뜻입니다.
아무도 볼 수 없는 하나님과 나 사이의 은밀한 일이니 그에게 인간으로서의 본질이 다 들키고 제대로 폭로되면 하나님의 공의인 율법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육적인 나 자신이 밝히 드러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못한 나는 마땅히 죽어야 할 자가 아니던가요? 그렇게 마땅히 죽어야 할 자를 그가 죽여주셔서 죽는 옛 사람의 죽음이 바로 다나토스의 죽음이며, 죽음은 곧 새 사람으로서의 부활을 의미합니다.
[전 3:19] 인생이 당하는 일을 짐승도 당하나니 그들이 당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짐승이 죽음 같이 사람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
옛 사람은 짐승이나 다름없는 인간으로 남아있는 것이고 새 사람은 육의 몸을 벗고 진리인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신성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보다 많은 이들이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으로 거듭 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카리스 에클레시아 이화율 집사
Daegu / 010-3032-8290
'진리와 생명의 증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0) | 2022.02.17 |
---|---|
기름 부음 (0) | 2022.02.13 |
살리는 것은 영이니. (0) | 2022.02.08 |
베레쉬트의 마음 44-4 (0) | 2022.02.08 |
삼위일체는 非 비진리 (0) | 2022.0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