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40:13] 아론에게 거룩한 옷을 입히고 그에게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하여 그가 내게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게 하라 14 너는 또 그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들에게 겉옷을 입히고 15 그 아버지에게 기름을 부음 같이 그들에게도 부어서 그들이 내게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게 하라 그들이 기름 부음을 받았은즉 대대로 영영히 제사장이 되리라 하시매
필자가 아는 교회 두 곳은 매우 시끄럽습니다. 두 곳 다 출석 교인이 350명 이상 되는 적지 않은 교회입니다. 이유는 조금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담임목사의 말씀이 별로라서 은혜가 안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목사를 바꾸기 위해 교인들이 시위하는 곳도 있고 장로들이 연판장을 돌려 위임 목사 해임을 결의한 곳도 있지만 정작 결행 단계에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점에 브레이크가 걸린 상황입니다.
한 곳은 교인들이 성경 구절을 들이대며 기름 부음을 받은 목사, 주의 종인 목사를 쫓아내거나 해하면 죽임을 당하거나 벌을 받는다고 선동하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실정이고, 한 곳은 공동의회를 열어 목사 해임의 기회를 엿보고 있지만 연세 드신 분들이 많아 투표 시도를 못한다고 합니다. 연세 드신 분들이 목사를 ‘기름 부음을 받은 자’로 특별하게 인식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두 교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기름 부음’은 과연 무엇인지, 성경에서는 어떤 이들을 ‘기름 부음 받았다고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장막 곧 회막 성전을 세우게 하십니다.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는 인간들을 위해 성전의 의미를 설명하시기 위함입니다. 이 회막 성전은 눈에 보이는 성전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성전이 있다는 것, 네가 나의 양육과 섬김과 가르침을 받아 내가 거하는 처소, 너와 내가 함께 거하는 마음 성전이 되어야 한다는 걸 깨닫게 해 주시려는 사랑이 담겨있습니다.
[출 15:17]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
[막 14:58] 우리가 그의 말을 들으니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 동안에 지으리라 하더라 하되
[히 9:11]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마음 성전은 진리의 말씀인 하나님의 영(루아흐)이 누군가에게 강권적으로 임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지어지는 은혜의 처소입니다.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는 눈에 보이는 모든 성전은 모형으로서 궁극적으로 하나님 자신이 진리의 말씀으로 짓겠다는 성소를 말합니다. 단순히 관념적으로 ‘예수 믿고 천국 간다, 하나님 믿는다, 교회 다닌다’가 아니라 여기에서 시작하여 그리스도로 창조되는 시점까지 가야한다는 얘깁니다.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아론에게 입히는 거룩한 옷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가 입는 옷, 육신은 생명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해 주셔서 입는 옷, 나 자신을 부인하게 해주심으로 입게 된 옷, 말씀에 목 베임을 당하므로 말미암아 입게 된 진리의 옷을 뜻합니다.
이제 그 문제의 ‘기름 부음’이 등장하는 대목입니다. 그(아론)에게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하여 - ‘기름 부음’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마솨흐’는 기름을 바르다, 성별하다, 기름 붓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먼저 얘기하자면 기름은 말씀이신 하나님의 영(루아흐) 즉 진리의 성령, 보혜사를 의미합니다. 누가복음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눅11:13)” 하신 말씀을 연상하시면 되겠습니다.
‘기름을 붓는다’는 건 모세가 성막 성전에 담겨진 하나님의 마음인 진리의 말씀을 밝히 해석하고 풀어 들려줌으로서 아론과 그 아들들이 깨달아 성령의 전이 되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문자적인 해석이 아니라 율법 안에 담아놓으신 내용으로서의 진리, 하나님이 맹세로 보증하신 언약이 이루어지는 것(롬11:27), 육의 몸을 벗는 그리스도의 할례(골2:11), 그들의 내면에서 하나님의 생명이 완성되는 창조(창1:1), 말씀을 불어넣는 성령 세례를 말합니다.
육신의 눈으로 보면 하나의 행사나 의식, 예식 정도로밖에 안 보이지만 복음 안으로 들어오면 모두가 다 진리를 설명하기 위한 말씀으로 들립니다. 하나님이 정결 예식의 규례를 말씀하셨으나 의식 행위 그 자체에 갇혀 정작 봐야 할 예식 안에 담긴 진리를 보지 못하는 게 처음 하나님을 부르는 혼(프쉬케)적인 인간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본다’하고 ‘안다’고 하나 하나님은 한사코 그게 아니라고 하시는 겁니다.
회막 성전은 여호와를 간절히 소망하는 누군가의 내면에 건축되는 마음 성전의 모형입니다. 그리스도의 영, 성령, 말씀의 영, 진리의 영, 보혜사가 임하면 그것이 마음 성전이라는 얘깁니다. 은혜로 말미암아 나 자신의 마음에 성전이 건축되면 이것이 곧 구원이고 부활이고 빛으로서의 영원입니다. 나 자신이 나의 내면에 건축되는 성전의 제사장 즉 ‘기름 부음 받은 자’ 다른 말로 ‘성령 받은 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위에서 잠깐 언급한 바와 같이 듣기에 둔한 인간을 깨우치기 위해 먼저 눈에 보이는 성전을 만들게 하시고 하나님이 그 안에서 행하고자 하는 생명 창조 사역을 하나하나 설명하십니다. 그러나 인간은 눈에 보이는 예식이라는 형식에 붙들려 정작 중요한 내용을 놓쳐버립니다. 하나님이 솔로몬 성전과 스룹바벨 성전을 허락하셨지만 엉뚱한 것을 바라보는 인간들을 위해 이방 나라를 동원하여 무너뜨리시는 이유가 바로 성전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으로서의 진리를 보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헤롯 성전뿐만 아니라 말하는 성전인 예수 그리스도 자신조차도 나무에 달려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러지라라(눅21:6) 하신 말씀대로 눈에 보이는 율법이 깨져야 내 안에 진정한 성전이 건축됩니다. 그것은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 번에 성소에 들어가시어(히9:12) 언약을 이루시는 것을 믿는 대제사장인 그리스도에 의한 각 사람들마다의 마음 성전입니다.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 동안에 지으리라 하더라(막14:58)’ 하신 그대로 장사한지 사흘 만에 부활하여 제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영으로, 보혜사로, 성령으로 임하심을 시작으로 인간의 손으로 짓지 아니한 성전 곧 창세기 1장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성전의 머리로 오셔서 땅을 하늘로 만들어 가시는 창조 사역을 지금까지 계속하십니다.
[요일 2:20]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요일 2: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결론입니다. 지금의 목사가 가고 다른 목사가 온들 복음을 모르는 이라면 그 역시 꽝입니다. 내 마음 안으로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목사 한 사람만이 ‘기름 부음 받은 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어 믿음 안으로 들어온 모든 이들이 하나님의 영, 보혜사, 말씀의 영, 성령, 진리의 영, 그리스도의 영에 의해 완성되는 것인 바 아무도 가르칠 필요가 없는 각자 마음 성전의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부디 맹인에 의해 맹인이 인도되는 멍한 상태에서 벗어나 진리의 말씀에 갈급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카리스 에클레시아 이화율 집사
Daegu / 010-3032-8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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