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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와 생명의 증거

베레쉬트의 마음 52-2

♣️ 베레쉬트의 마음 52ㅡ2
(수고하고 무거운 짐 ㅡ 잇차본)



보지 못한다는 것이 뭔지, 듣지 못한다는 것이 뭔지, 다리를 전다는 것이 뭔지, 죽었다는 것이 뭔지 조차도 모르고, 그런 상태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교회를 다니면 죽을때까지 그 하나님은 나의 예배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하나님이 나의 예배를 받으셔야 할 섬김의 대상이 되어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어떤 예배의 기준에 의해 다루어지지 않겠는가


예배에 참석하면서 내가 이런 마음으로 가면 안되지~ 나쁜 마음 먹지 말아야지~
전부 백이면 백 각각 다른 어떤 기준을 가지고 교회에 나온다


그렇게 하나님을 다루려고 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40일 작정기도하면 내가 기도하고 있는 그 기도제목에 응답을 하신다고 생각하는 것, 이것은 40일 기도에 의하여 하나님을 다루는 것이다


솔로몬처럼 횟수로 일천번을 헌금을 한다든지, 아니면 일천번 새벽제단을 쌓으면 나의 모든 소원이 이루어진다든지...
교회안에 이런 것이 많지않는가


? 자기가 맞다고 생각하는 어떤 섬기의 기준으로 하나님을 달래는 것이다


? 40일 금식기도, 일천번제 헌금과 새벽제단에 열심과 정성으로 얼마든지 하나님을 얼르고 달랠 수 있다고 세상교회가 은연중에 믿고 있는 것이다


? 교회가
교회나오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부추겼다
그렇게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신다고,강단에서 계속해서 그렇게 해보라고,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는지 드려보라고, 하나님께서 안갚아 주시는지 이러면서 돈놓고 돈먹기식의 은헤를 알려준 것이다


➡️ 사도바울은 이런 모습을 자의적 숭배라고 했다


✝️ 에델로드 레스케이아 ㅡ 자기가 만든 하나님


? 내가 다룰 수 있는 그런 하나님은 없다


자기가 만든 기독교, 각각이 다르지 않는가
똑같은 말씀을 놓고도 다른 얘기를 한다

? 아버지가 하나인데 어떻게 다를 수가 있는가


억지로 무슨 쇠뇌를 시켜서
똑같은 말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 받은 은혜가 어떻게 다를 수 있겠는가

✝️ 은혜는 살리시는 은혜 하나 밖에 없다
선물은 하나 밖에 없는 것이다

왜~ 이것도 은혜고 저것도 은혜고
엉뚱한 것도 은혜고 다 은혜라고 하는가~

? 그것이 비슷한것 같지만 아닌 사이비다



[골로새서 2:23]
이런 것들은(⚘사람의 명령과 가르침)
자의적 숭배(⚘에델로드 레스케이아)와
겸손(⚘타페이노프로쉬네)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아페이디아-철저한 금욕주의)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

? 은혜에 있어서는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것이다


➡️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가지고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으로
명령이니까 무조건 지켜야되고
가르침이니까 배워서 무조건 따라야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진리를 내용으로 담고 있는 성경을
명령으로 삼고, 가르침으로 삼아서
오늘날 교리로 만든 것이다


이것이 정해진 규칙이니까 이 교리가 아닌
다른 이야기하는 것들은 '다 이단이다'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교리를 사람들이 지켜내야 할, 배워내야 할,
그것이 신학교가 되었든, 교회 나와서 제자 훈련 성경공부 어떤 훈련 과정이든, 그것을 꼭 배우고 지켜 내야 할 명령과 가르침으로 주고 받는 것이
자의적 숭배이며 그것이 겸손이고
몸을 괴롭게 하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므로
수고롭게 일할 수 밖에 없는 실상이다

자의적 숭배, 겸손, 몸을 괴롭게 하는 것이
저주와 수고의 실상이다


진리 안에 거하는 자들은 혹 진리 안에 거하지 못하더라도 정말 아버지가 말씀하시는 내용으로서의 진리를 조금이라도 알아 들은 사람은 지금 저 사람이 자의적 숭배를 하고 있는 것인지, 저것이 하나님을 우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인지, 아니면 정말 아버지로 함께하고 있는 것인지 그것은 우리가 보인다

정확하게 복음을 듣게되면
내가 진리가 안되었어도 알 수 있다


창섹기5:29절이 얘기하는 땅이 받은 저주는 율법의 저주고, 율법의 저주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으로 그렇게 받게 하는, 이해하게 하는 자의적 숭배로 드러나는 것이다


교회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거의 이렇게 말한다
그사람 나름대로 신앙생활 잘해~
나름대로 하나님 잘 믿어~

우리는 행위적으로 보여지는 열심을 가지고
평가를 한다

적어도 그 진리와 구원과 은혜가 뭔지 알면 그런 평가를 내리는 것에 조금 조심하셔야 한다

왜냐하면 거기에 내가 같이
걸려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자의적 숭배로 드러난다
자의적 숭배가 겸손과 몸을 괴롭히는 모습으로 확인된다는 것이다


✝️ 겸손으로 번역된 '타페이노프로쉬네'는 골2:18절에서 바울이 언급한 꾸며낸 겸손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겸손이라는 단어 앞뒤로 있는 자의적 숭배와 몸을 괴롭게 하는 것과 동일한 의미로서의 겸손이다

? 그런 겸손이 무엇인가

내가 거룩한 척 하면, 내가 겉모습으로
한번도 안 빠지고 교회를 나가 준다든지
목사가 이야기하면 겉모습으로라도 따라주는 것들,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좋아하시겠지 라는
스스로가 봐도 이것은 참 거룩하고
그래도 쓸만한 거다 괜찮다고 생각하는
기특하다고 여겨지는 그 생각,
이정도면 쓸만한 그리스도인 아니냐 하고
그 생각에서 나오게 되는 모든 행동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생각과 그런 행동들의 결과물이 몸을 괴롭게하는 것으로 드러날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 말로 몸을 괴롭게하는 것이라고 번역을
해 놓았지만 헬라어 명사 '아페이데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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