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언약의 비석들이 있고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히9:4-5).
또 아론에게 이르되 항아리를 가져다가 그 속에 만나 한 오멜을 담아 여호와 앞에 두어 너희 대대로 간수하라.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그것을 증거판 앞에 두어 간수하게 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이 사람 사는 땅에 이르기까지 사십 년 동안 만나를 먹되 곧 가나안 지경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만나를 먹었더라. 오멜은 에바 십분의 일이더라(출16:33-36).
히브리서 13장 20-21절에는 “하나님이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이루시기를 원하노라.”라고 하였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어떤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서 이루기 위해서는 지성소의 생활이 필수적이다. 지성소 안의 생활의 첫 번째 항목은 먹는 것이다.
1. 기념물
히브리서 9장의 만나는 금항아리에 넣어서 증거궤 속에 간직한 만나이다. 광야에서 매일 내리던 만나가 아니라 그 중의 일부를 항아리에 담아서 증거궤 안에 넣어둔 것이다. 이것이 감추인 만나이다. 모세는 만나 한 호멜을 담아 여호와 앞에 두어 대대로 간수하여 기념물이 되게 하라고 하였다(출16:33).
만나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농사를 지은 것도 아니고 어디서 가져온 것도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선물이었다. 그 선물 한 오멜을 여호와 앞에 간수하라고 하였는데 한 오멜은 에바 십분의 일로 온전한 최소 단위이다. 우리가 쌀을 말이나 되나 홉에 계량하듯이 오멜은 홉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돈에 비유하면 최소 단위인 일 전에 해당된다. 한 오멜의 만나를 항아리에 넣어서 증거궤에 간수하였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것으로 감추인 만나가 되었다.
‘기념’이라는 말은 ‘새긴다. 각인한다.’는 의미가 있다. 기념하라는 것은 새기고 각인하라는 뜻이다. 선물이니까 은혜를 새겨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새기면 날마다 감사할 일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받은 은혜를 흘려 버리기 때문에 받은 것은 없고 받을 것만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녀였다가 부모가 되는데 자녀였을 때 부모에게서 받은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기억하기만 하면 부모에게 감사할 일만 있을 텐데 그렇지 못하고 받지 못한 것이나 부모가 잘못한 것만 기억하고 있다. 그러니까 감사하지 못하고 인생이 행복하지 못한 것이다. 만일 받은 은혜를 다 기억한다면 감사가 넘칠 것이다. 우리는 무에서 유로, 하나에서부터 백까지 전부 은혜 안에서 살았지 우리가 스스로 무엇을 한 것은 별로 없다. 은혜가 기초가 되었기 때문에 무엇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혜가 우리에게 기념이 되지 않는다.
복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은혜가 기념이 되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이고 기념이 되지 않는 사람은 복이 없는 사람이다. 객관적으로 혜택을 많이 받은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지만 아무리 부모로부터 혜택을 많이 받은 사람도 많이 받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자기에게 기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사십 년 동안 은혜로 먹은 만나를 항아리에 넣어서 대대로 간수하라고 하셨다. 은혜는 대대로 간수할수록, 대대로 새길수록 행복한 것이다. 은혜는 새기는 것이 필요하다. 아무리 적은 것이라도 각인되는 것이 필요하다.
어렸을 때는 부모의 은혜를 다 잊어버리고 살지만 부모가 되면 자녀들을 볼 때 ‘내가 이렇게 은혜를 베푸는데 저 녀석이 왜 기억하지 못할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렸을 때는 그렇지 못하다. 젊었을 때 알면 좋을 텐데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되면 그때 비로소 알게 된다. 그래서 노인들은 젊은 사람들을 볼 때 ‘저렇게 은혜를 모를 수 있는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사십 년 동안 만나가 왔다면 그것을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광야에서 사십 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무엇을 먹고 살았겠는가? 애굽에서 나올 때 어떻게 나왔던가? 불란서 혁명처럼 피를 흘려서였는가, 러시아 혁명처럼 총칼로였는가? 그들은 그럴 힘이나 능력이 없는 백성들이었다. 출애굽기 20장에서 열 가지 계명을 주실 때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라고 말씀하셨다. 너희가 어디서 왔는지 새기라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근본을 새기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한 것이다. 자기의 근본을 깊이 새기고 있는 사람은 깊이 닻을 내리고 있는 배처럼 그 인생이 정해져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떠다니는 배와 같아서 풍랑을 만나면 뒤집히게 될 것이다. 그래서 기념물이 되게 하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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