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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와 생명의 증거

[스크랩] 성령의 감동....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기운으로 이루었도다(시 33:6)

 

하나님의 신이 나를 지으시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느니라(욥 33:4)

 

"주예수께서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살후 2:8)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사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 2:7)

 

하나님의 '감동'은 (데오프뉴토스)'하나님이 숨을 내쉰' 이라는 이라는 의미임을 이미 말씀 드림처럼 성경을 이루신 하나님은 그전에 이미 하나님의 창조사역에(시33:6) 하나님의 '숨' 혹 입기운 으로 이루도록 하심을 알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감동 이라고 하면 정서적인 감동과 감흥을 말하는것으로 국한해서 생각하기 쉽지만 감정상의 것을 상회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감동입니다. 국어 사전적 의미의 감동  (感動)"마음이 크게 움직임" 과는 다른것을 알수 있습니다.

 

마치 경건의 국어 사전적 의미가 "깊이 삼가고 조심함"이라해서 경건한것은 삼가고 종용함을 의미한다고 착각을 하는것과 다르며 실제 경건의 의미가 "유세베이아" 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자애를 발휘함과 하나님을 향한 신실함을 나타내는 의미와 다름처럼

 

우리가 감동이라고 아는 딤후3:16 의 감동과 실제 의미상 에서는 차이가 존재합니다.

물론 마음을 감동하여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다는 범주도 분명히 들어가지만 그것에만 국한된것은 아니라는것입니다.

 

만상이 입기운으로 이루어 졌다는 의미는 그 입의 기운이 우리 영혼을 이루시고 또한 살리시며 우리로 움직이도록 하신다는 뜻도 됩니다. 그래서 "영감이 있다" 는 말의 의미는 하나님에 의해 움직인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마 5:45) 함과 같이 모든이에게 차별이 없는"(롬3:22)(롬10:12) 공평하신 은혜이십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그러면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생길수가 있는데

왜 어떤이는 자기 신앙도 제대로 유지하기가 힘들고 반대로 어떤이는 수많은 이들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고 그들을 그리스도에게 이끌수 있는가 하는것에 대한 의문입니다.

 

주시는 하나님은 은혜의 입의 기운을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시는 품성과 속성을 갖고 계시는데 사람마다 차등이 생기는가? 우리 눈에도 현재도 보이고 많은 역사로도 알수 있는 이러한 차등에 대해 성경은 고전 12장의 한장을 할애하여 설명합니다.

 

고전12장은 은사의 다양성과 차등에 따라 우리가 달라보일수 있지만 "모든것을  모든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6절 또한 "은사는 여러가지나 성령은 같고" 함과 같이 우리는 한분 하나님의 역사에 의해 차등과 다름처럼 보여진다고 하시며 은사의 이유가 서로를 돌보며 돌아보도록 하심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위의 말씀을 게으름으로 이용하는 분들이 가끔 있음을 봅니다.

'어차피 다르기에 저 열정적인 사람들은 저 사람들 만의 은사대로 하는것이고 나는 나 대로 이다' 라는 주장을 일신의 안일함과 게으름,불충성의 이유로 들이대는것은 바로 성경말씀의 잘못된 인용이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운 입의 기운은 지금도 우리 모두에게 동일하게 역사하심을 고전 12장에서 알아볼수 있습니다. 다만 각각의 기질대로 나타남이 다르기에 예레미야 에게 이사야같은 일을 시키지 않으시고 베드로에게 요한의 그것을 요구하시지는 않습니다. 만일 나타남도 동일한것 같으면 사도는 12명이 아닌 한명으로도 족할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동일하게 역사하시지만 모두가 동일한 순종을 하는것이 아니며

그입의 기운을 가로막는 것에 대하여 롬 1:18 은 "불의로서 하나님의 진리를 막는 사람들"로 표현하십니다.

 

롬1:18 절은 본래는 불신자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을 향한 말씀이지만 우리가 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행한대로 심판을 받는다는 예언의 말씀(고후5:10)으로 알수 있듯이 우리의 순종적인 행함에 기인하며 이것은 복음안의 행함의 차등을 설명함이지 율법적으로 행동자체로서 의로워지려고 하는것을 말함이 아닙니다.

 

복음은 말하기를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라" 말씀하셨으며 말과 혀로만의 사랑을 말씀하심이 아닙니다. 행함은 단 두가지 말고는 존재 하지 않습니다.복음안의 행함과 그외의 모든 행함인 율법안의 행함입니다  롬2:14~15 로 알수 있듯이 율법을 몰라도 자기 양심이 율법이 되어 서로 송사함과 같이 모든 불신자도 율법아래 있습니다.

 

여기서 복음적인 행함을 하기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성령의 감동에 대한 내 영혼으로 솟아난 순종입니다. 예수는 믿음의 대상이고, 성령은 순종의 대상이며, 아버지는 섬김의 대상입니다.

성령을 바람,이나 숨 으로 말하기도 하는 성경의 기록을 보면 알수 있듯이 이러한 숨결에 의한 반응이 바로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적인 능력의 나타남인 이 숨결에 대한 상대적인 반응이 바로 순종이며 이러한것이 바로 감동에 대한 인간의 반응입니다. 바로 이것이 경건이 되는것이며 혹 이것을 성령의 감동,음성에 순종한다는 개념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성경말씀을 자구를 따라서 순종하는일은 혹간 율법주의적인 행함으로 빠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일들을 벌였던 이들에 대해 바울은 자신의 서신에서(골2:20~23) 상세히 설명하기를 초등학문인 율법에서 죽었거든 의문(義文)에 순종하느냐 하여 이런것은 육체 좇는것을 금하는데는 유익이 조금도 없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의문=율법) 다만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데에나 유용하다는 말을 첨부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감동을 따를것이냐 아니면 문자적 의미는 생각지 않고 깊은 상고도 없이 그저 행동으로 옮기느냐에 따라 그가 성경을 어떤 방식으로 대하는지가 결론내려집니다.

성경은 감동으로 되어진것이며 우리에게도 이러한 감동이 지속적으로 존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안에 주시는 이러한 감동을 깨인정신으로 받고 그대로 순응되는것이 우리의 신앙의 실행의 목표점입니다. 영적인 거장들의 서적을 읽다보면 맨 나중에 늘 나오는 말이 거의 공통적으로 비슷합니다. 바로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라" 라는 결론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성경도 요한계시록의 시작부분에서 "귀 있는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로 시작되어 말미인 22장 17절의 아름다운 표현인 오라하심을 말씀 하십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우리가 성령의 음성과 감동에 순종하는일이 바로 복음적인 순종을 할수 있는 길이 됨을 주님이 미리 말씀하시기를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16:13)

 

우리는 진리가운데로 인도받는일에 성령께 철저히 의탁을 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며 이것이 바로 감동에 순응되어지는것입니다. 감동에 순응하고 순종하는것이 바로 신령한 영적 생활이되며 이러한 사람들이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드리는 삶이며 이러한 자들을 아버지께서 찾으신다고 요4:23로 주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우리 삶의 예배는 매우 중요합니다.

바로 "너희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영적 예배니라" 함과 같습니다.(롬12:1)

 

이것이 가능한 길이 바로 하나님의 감동에 순응되는 곧 성령의 감동에 순응되는 것이며 이러한것을 위하여 우리에게 늘상 감동을 주시는 기도생활과 성경의 깊이 있는 상고의 시간은 주신 감동대로 순종하는것으로 우리는 나아가야할것입니다. 절대 개인의 경건은 단순히 자기 자신만을 위한것이 아닙니다.

 

경건의 실제적의미가 지체들과 세상을 향하는것임을 알수 있듯이 개인의 경건과 성령께 대한 순종은 풍성함과 철저함에 있어서 하늘로서 좇아나온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함과 같이 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행함과 진실함의 사랑은 육신에서 솟아난 억지와 보이기위한 섬김이 아닌 영에서 솟아난 참된 섬김이 될때  우리가 하나님의 기쁨이 될것으로 여깁니다.

 

하나님의 숨결인 '감동'이 풍성하지 않은 성경인용은 그자체가 마귀적이며 율법적 초등학문 수준이며 생명과 무관한것입니다. 이러한 분별을 이루심으로 어린아이 상태를 벗어나는일을 위해 우리 모두가 겸손한 무릎과 학생심(學生心)을 잃지 않게 되기를 우리를 죽음에서 살리신 주 예수의 모든 자비하심에 기대어 기도합니다.

 

 

 

 

출처 : 베다니사랑과 복음- 평신도 교회
글쓴이 : 본향그리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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