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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갈대(생명)의 척량..

[스크랩] 죄사함과 거듭남의 원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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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강>    죄사함과 거듭남의 원리(3)


이번에는 아브라함이 유브라데강(or 홍해)을 건너 거듭나는 것을 살펴봅니다. 아브라함은 아버지 데라의 밑에서 형 하란과 동생 나홀과 함께 다복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졸지에 형이 죽게 되면서 인생의 덧없음을 깊이 실감했겠지요. 가정의 풍파가 그의 심령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계기가 되었고 고향인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까지 왔습니다(행7:2, 창11:31). 


그러나 중간지역인 하란에서 수 세월의 망설임이 있었고, 데라의 죽음까지 이르러서야 재차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고(창12:1) 마침내 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이렇게 세상에서 부르심을 입고 교회로 나오게 되는 것은, 반드시 어떤 사건과 환경이 선행되어서 인생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거나 사면초가의 입장에 처해진 자들에게 해당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깨어지고 낮아진 심령으로 조성되지 아니한 상태로 복음을 듣고 예수를 영접했다면(사영리 교리 등등) 십중팔구는 어설픈 교리나 이론으로 거듭났다고 착각하고 신앙생활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대부분 ‘천국’에 간다니까 혹은 세상의 부귀, 영화, 건강, 형통의 복을 준다니까 교리절차에 따라 입술로 한 것이며, 이 상태로 시간이 흐르다보니 스스로 굳어져서 믿음이 거짓인지 참인지를 분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지요.


회개한 자에게만 죄사함이 있습니다. 회개란 지금까지의 하나님 없이 살아온 자신의 삶이 바로 죄악이었음을 인식하고 하나님을 향해 발걸음을 되돌리는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던 죄악, 자신의 재능과 재물을 의지하며 살던 교만, 창조주를 부인하던 자가 하나님의 몰아치는 사건 속에서 침몰한 것입니다. 깨어져 겸비한 심령에 복음이 들려지면 두 손 들고 나아옵니다. 이것이 회개이지 입으로 콩이요 팥이요...되뇌며 잘못했다고 주절거림이 아닌 것입니다.


이렇게 옛사람을 부인하는 것을 피를 쏟는다고 표현합니다. 피에는 생명(네페쉬)이 있기 때문입니다. 네페쉬(히)란 정신과 사상을 말합니다. 즉 여태까지의 자신의 본질인 정신은 세상신이 주인이 되어 살아온 것이었기에 이것을 쏟아버려야 하나님의 신이 그 안에 들어가서 그를 소유할 수가 있는 이치입니다(창9:4. 레17:11). 사람이란 어떤 영(神)을 담는 그릇이니까요.

 ->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8:9)

 

사람 속에 더러운 세상영이 있다면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성령)은 그 안에서 공존 할 수 없지요. 그러나 피를 흘리지 않은 사람의 욕심은 하나님도 섬기고 세상신도 받들기 때문에 여전히 옛사람이지, 정작 그리스도인이 아님에도 착각하고 있답니다. 즉 온전한 돌이킴인 참 회개가 없었다면 ‘피흘림이 없은즉 죄사함도 없고’, 더군다나 성령의 인침(거듭남)도 없는 것입니다.


참 회개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안배하신 환경 속에서 꺾여져 되는 것이기에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회개케 하는 역사에 따라 회개가 이루어지면 성령님은 오시지 말래도 찾아오셔서 새 생명을 잉태시키며, 이어서 거듭남의 출산이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전 과정을 거쳐서 반석 위에 집터가 비로소 완성 되는 것입니다.  

출처 : 베다니사랑과 복음- 평신도 교회
글쓴이 : 하늘향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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