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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갈대(생명)의 척량..

[스크랩] 죄사함과 거듭남의 원리(2)|

 

<제 5강>    죄사함과 거듭남의 원리(2)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러나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와 문인방에 바름으로 사망의 심판은 건너갔습니다. 주께서 흘리신 피로 죄사함을 받는 비유입니다. 이제 그 고기를 먹는 것은, 주의 입에서 나오는 영과 생명의 말씀을 마음으로 믿었다는 의미입니다. 복음을 듣고 아멘으로 받아들이면 말씀 씨가 마음 태에 떨어져 잉태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출생 전입니다.  


출생을 위해서는 그 밤에 급히 애급을 떠나는 발걸음을 옮겨야 합니다. 발걸음이란 내쪽에서의 역할이 있음을 말합니다. 실제 사흘 길 후에 (출3:18,출13:20~14:2) 홍해를 건너는 것은, 생명의 출산인 거듭남으로 비유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비밀이 있습니다. 만일 사흘 길을 가지 못하여 망설인다면 뒤쫓아온 바로의 군사들한테 다시 사로잡히고 말 것입니다. ‘값없이 주는 복음‘을 들을 때는 좋았지만, 그 밤에 정든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자고 하면 포기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흘 길은 비유입니다. 이 길은 어떤 자에게는 한 순간일 수도 있으나 다른 이에게는 영원히 도달할 수없는 좁은 길이지요. 주님이 가신 길(죽고 장사됨과 부활)이 사흘길입니다.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눅13:32).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위해 미리 삼일 길을 간바 있습니다.


그렇다고 방금 복음을 들은 자가 즉시 사흘 길을 갈 수는 없습니다. 사람 자신에게 적용되는 것은 광야 40년 훈련을 마친 후 요단강에서 입니다. 지금의 사흘 길인 홍해는 주님이 나에게 베푸신 사랑의 어떠함을 절절이 느끼는 인식에서 오직 은혜로 건너는 것이지요. 내 공로는 전혀 없습니다. 다만 한없는 은혜와 사랑을 깨닫는 것이 관건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그 큰 사랑에 감격하여 한 순간에 사흘 길을 갈 수 있나요? 이미 오랜 세월을 사람 막대기와 인생채찍으로 숨통이 죄여져 세상에 대해 낙(樂)이 끊어진 자만 해당 된다는 뜻입니다. 어쩔수 없는 환경으로 죄의 범벅이 되어 양심의 가책으로 절망하던 자들에게 주님은 찾아오셔서 무거운 죄 짐을 벗겨주십니다. 주님은 죄인과 병든 자들을 위해 오셨으니까요...


이자들을 일컬어 창기와 세리와 죄인들이라고 표현합니다. 혹은 어린아이라고도 말합니다. 이렇게 큰 죄빚를 많이 탕감 받은 자는 주를 더더욱 크게 사랑할 것입니다(눅7:43). 이것이 처음사랑입니다. 주님은 빛이요 생명이며 사랑이십니다. 그는 사랑을 소유함으로 또한 생명(Jx)을 받았습니다. 비로소 죽음의 바다를 건너며 구름 아래에서 세례를 받고 새 생명으로 거듭났습니다(고전10:1~4). 

 -> 나의 큰 죄과를 철저히 인식하여 벌레만도 못하다고 절망한 적이 있었나요? 없었다면 아직 사흘 길을 가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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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베다니사랑과 복음- 평신도 교회
글쓴이 : 하늘향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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