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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찬미

당신은 능력 받으셨습니까?/겸향 이병한

 

당신은 능력 받으셨습니까?/겸향 이병한

 

 

 

 

 

1. 우리나라는 아직도 학벌과 문벌과 인맥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하나의 능력으로 작용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아무리 부정 하려고 해도 부정 할 수 없기에 거기에 매달려 보지만 그것은 마치 운명을 바꾸는 것과 같이 불가능해 보입니다.

 

하지만 학벌이나 문벌 인맥에 치부하는 사람치고 썩지 않은 사람이 없고 그것에 집착 할수록 아름다운 정서는 메말라 있습니다.

 

 

 

 

 

 

 

 2. 미국은 학벌 보다는 실력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합니다. 물론 우리나라도 실력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더 좋은 방향으로 변화되어 갈 것입니다. 이 사회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지 꾸준히 실력을 키워간다면 멀지 않는 날 실력 있는 사람이 대우받는 좋은 사회가 오게 될 것입니다.

속담에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는 있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천하고 부족한 사람도 한 가지 재주는 있다는 말이겠지요. 아직 자신만의 독특함을 찾지 못해서 그런 것뿐입니다.

 

 

 

 

3.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나사렛에서 사신 예수님은 학벌이나 문벌이나 인맥 그 어떤 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가지지 않았기에 그것을 가진 자로부터 무시를 당하고 그들의 손에 잡혀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됩니다. 예수님은 살아생전에 실력만은 이 세상의 그 어떤 사람도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앉은뱅이를 일어나게 하고 죽은 자를 살리고 물위를 걸으시고 그가 말 하는 대로 죄가 사해지고 그 증거로 병이 치료되고 또 오병이어의 기적은 얼마나 감동적인 사건이 되고 있었습니까?

 

 

 

 

 

 

 

 

 

 

 

 

 

 

 

 

4. 그 때 수많은 군중들이 예수님을 따르며 그의 제자가 되기를 자청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는 군중들을 자신의 실력에 따른 열매라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부자청년도 돌려보내고 니고데모 같은 실력 있는 사람도 돌려보내고 괜찮은 사람들 다 돌려보내고 그가 선택한 제자는 어부들과 세리 실력이 떨어지고 가진 것도 없는 자들을 제자로 받아주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자신이 목표로 하는 하나님나라와 잘 맞는다고 생각 하신 것 같습니다.

 

 

5.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이 보기를 원하는 실력을 다 가지고 있었지만 그런 것은 제한적으로만 보여주시고 그것으로 인해 발생한 변화를 열매라고 보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런 것 다 주서 모으면 굉장한 집단을 이루었을 텐데 말입니다. 예수님은 군중들이 자신을 에워싸 주었지만 군중들에게 자신의 몸을 의탁하지 않으시고 왕으로 추대 하려는 움직임도 거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정말 놀라운 능력을 보여 주시면서도 늘 그런 것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행동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보여줄 진짜 실력은 따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6. 예수님의 동생들이 형님이 거사를 행하시려면 예루살렘으로 가셔야지 해변가 변두리만 돌고 계시면 어떻게 하느냐는 권면을 드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때가 되었을 때 예루살렘에 입성을 하시고 거기서 만찬이 준비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뭔가 자신이 감추고 내놓지 않았던 진짜 실력을 내놓을 때가 된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만찬에서 잔에 포도주를 부으시며 이 잔을 받아 마시라 이 잔은 많은 사람의 죄를 사함을 얻게 하는 언약했던 피라고 말씀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진짜 실력은 자신의 생명의 피를 부음으로 나타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7. 사람들이 보기를 원하는 실력과 예수님이 보여주시려는 실력과는 현저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보기를 원하는 것은 세속적인 가치였지만 예수님이 보여주시려는 것은 영적인 가치였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만 수많은 사람들에게 죄 사함을 줄 수 있고 죄가 용서 되어야만 참 생명이 온다고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그토록 획득하기를 원하는 것은 다름 아닌 용서의 능력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이 용서의 능력을 소유 하신 것입니다.

 

 

 

 

 

 

 

 

 

 

8. 이 세상의 모든 역사적 운명을 결정 할 책이 일곱인으로 봉해져 있는데 아무도 그 책의 인봉을 떼서 펴거나 보거나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사도 요한이 크게 울었는데 장로 중에 한 사람이 그 책의 인을 뗄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자가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심으로 천상에서 이 모든 인류의 역사를 좌우 할 수 있는 권좌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위임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십자가를 통한 예수님의 용서의 능력 때문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9. 당신이 만약 주님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았다면 당신도 역시 용서의 능력을 받은 것입니다. 내 힘으로는 용서 할 수 없지만 주님이 주신용서의 능력으로 용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용서의 능력은 기본이고 또 다른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 하고 있습니다. 용서의 능력을 기본으로 깔아놓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이 전부가 되어야 하는데 또 다른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지금 당신이 힘들어 하는 문제는 바로 용서가 안 되는 문제일 것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다시 그 능력을 힘입어보십시오 당신에겐 지금 이미 그 능력이 와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10. 교회가 세속화 되는 것은 용서의 능력만 가지고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다른데 눈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교회 안에서 세속적인 가치가 들어와 왕 노릇 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판은 예수님의 교회이지만 예수님은 저 멀리 밀려나 있고 세속주의가 주인노릇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열매라고 여기지 않는 것을 주서 모으고 바울은 다 분토같이 여긴다는데 그게 얼마나 좋은 것인데 버리느냐고 말합니다. 교회가 회복되는 길은 세속적인 것을 버리고 용서의 능력을 힘입기 위해 자신을 부정 하는 자리로 나갈 때만 가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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