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에 대한 이해와 입장과 태도의 상이성은 믿는자가 다 같지않고 그 수준에 따라 다름을 히브리서의 지적함같이 젖먹이 아이와 장성한 자의 차이를 드러내는것 같습니다.
제가 글을 쓰기 시작한 처음즈음에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일까요? " 라는 글을 쓴적이 있습니다.
다양하게 말씀하심을 보고 생각이 많았답니다.
말씀은 어디로 들어와서 어디에 머무르며 어디에 역사하실까?
동공으로 들어와서 시신경을 지나 언어중추인 전두엽을 지나고 잠재의식속에 박히는것이 말씀의 경로인가? 영혼에 임하여 지각에 전이되어 두뇌로 이해되는것이 말씀의 경로인가?
지금 두가지를 말씀 드렸습니다.
쓸데없는 소리로 들리는분은 여기서 글읽기를 멈춰주시기를 바랍니다.
영혼에 임하는 말씀은 비언어적 영적현상의 범주에 있습니다.
동공에 투사되거나 청각의 경로로 들어오는 언어적 말씀은 이해되야하고 지식으로
쌓여야 합니다.
눈으로 성경읽기는 바리새인들이 인류역사상 가장 많이 했을것으로 추정됩니다.
영혼에 임하는 말씀은 아마도 바울이 가장 많이 받지 않았을까 추정합니다.
경로가 중요한것은 인간의 이성의 수준은 그저 짐승의 수준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의 지혜에 비하면) 영혼에 임하는 말씀은 영 혹은 영혼에 먼저 들어와서 지각과 이성에 영향을 미칩니다.(2분법과 3분법 때문에 이것도 둘로 나누지만 이제부터는 3분법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영에 임하는 말씀은 그 영혼의 존재자체를 변화시킵니다.
육의 상대적인 개념인 영은 육체의 소욕처럼 영의 소욕을 일으키어 우리를 더욱 거룩함에 이르도록 합니다.
그래서 경로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너희안에 거하심을 스스로 알지 못하면 너희가 버리운자 "라는 말씀이라고 봅니다.(고후13장5절)
구원받을때 혹은 회심할때 혹은 처음 하나님을 만났을때 등등 의 경우에 이 현상이 나타납니다.
그리스도가 말씀으로 우리안에 임하시는 현상이 성육신으로 이해가 안되면 그 만큼 뒤쳐진것
입니다.
성경의 여러사건과 여러 비유와 신학적인 부딪힘과 설명은 우리안에 이뤄집니다.
바로 성경의 그리스도도 우리안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에 이르릅니다.
물론 육신적 수준에서보면 2000년전에 이스라엘땅에서 죽으셨다고 믿겠지만요.
당신에게 현재 성경 지식이 한트럭 분량이 있다고 해도 당신안에 성령으로 부어진 사랑의 인격으로 영과 마음에 거하시는 그리스도가 없으면 당신은 버리운 자입니다.
이 생명안에서 나타나는 의와 신의 성품의 크기와 분량의 차이가 어린아이와 장성한 자의 분량의차이입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 라는 말씀도 무색하게 찢을수 있다고 보면 그리스도를 저멀리 하늘로 보내려는 시도일뿐 제안에 역사하시는 말씀(호 로고스)이신 본체의 형상이신분을 보낼수는 없음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우리안에 오셔서 성령과 아버지의 모습을 보이심을 그리스도께서 증거하심같이"나를 본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하심과 같습니다.
.
자신안에 그리스도가 임하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것이 정말 큰 낭패이고 현대교회의 패착입니다. 이것을 서로 다른 용법으로 설명하려는 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하나님의 임재 혹 하나님 자신을 뵙는 등의) 오직 우리에게 참된 길이며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이해하면 이런것이 그리스도안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머리로 외우는 성경말씀이 그영혼의 수준이면 바리새인들은 왜 그랬을까요?
바울은 오직 자신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로 충만한 사람이기에 그리스도처럼 말하고 행했습니다.
성령충만=그리스도의 충만=아버지의 충만 입니다.(이것은 순서를 정한것이 아니니 오해없으시기를) 이 세위격은 늘 함께 하시기에 우리안에 오실때에도 따로 오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한분이시기에 그러합니다.
말씀이 내안에 내영혼에 임하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과 연합이며 둘이 한몸이 된다함같은 결혼의 비유와 같음입니다.
이 말씀은 문자나 활자가 아닙니다.(물론 문자이며 활자로 나타납니다.)
활자가 있기전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이신 바로 그말씀(호 로고스)이 우리안에 오심이 중요합니다.("호" 는 정관사로서 호 로고스는 인격이신 말씀 그리스도를 지칭 합니다.)
바로 그말씀이 우리를 살리는 생명 그자체이며 하나님 이십니다.
우리는 언제든 하나님을 뵐때 그리스도로 볼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본자 자신안에 그리스도가 거하고 역사하시는 자 그가 하나님과 연합을 이루며 그가 성령의 사람이며 그가 바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을 드러내고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모든 사랑이 그리스도안에 있음같이"내가 저안에 저가 내안에 있음같은"일로 인하여
한사람의 장성한 그리스도인이 나타납니다.
지혜와 계시의 정신(영)을 주사 우리가 더욱 풍성히 그리스도를 받는것이 중요합니다.
한사람이 예수에 미치려면 이런일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엉뚱한 지식의 집합과 신학의 나열의 반복학습은 도무지 능력도 생명도 없습니다.
바로 경건의 모양만 내는 이런일들을 그만하고 우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는 그리스도를 계시받는것이 중요하지만 이것을 모르는분들은 제말이 도무지 이해가 안가실것입니다.
아마 이해가 안가서 묻고 또 물어보겠지만 이미 알고 있는 그것을 지키기 위하여 스스로 거부합니다. 바로 적그리스도가 다른데 있는것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임하시는 그리스도를 거절하면서도 자신의 머리속 지식을 우상화 하는 이런일이
온세상의 교회들을 이모양 이꼴로 만든일의 시작임을 스스로 깨달지 못하면
때가 오래된 어린아이들로 성경이 말하는 육체안의에 거하는 자들로 늘 그상태입니다.
대부분 성화는 행동의 변화로 이해하지 존재자체가 변화 된다는 것을 모름으로 율법아래 있는상태입니다. 율법의 종이기에 은혜안에 그리스도안에 거하는 자들을 성경대로 밟고 물어 뜻을 기회만 노린답니다 개들과 독사의 새끼들처럼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가 적그리스도 입니다.
이런주장의 처음시작은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세례받을때 영의 그리스도가 예수에게 임하셨다가 십자가에 달리시기전에 하늘로 가셨다는 독한 창질(매독)의 썩어짐같음에서 시작하여
이제는 내안에 그리스도는 성령이시라는 유형의 발전을 꾀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내안의 아들의 생명과 인격으로 사시는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매우 교묘한 방법이지만 실상 신의 성품과 아들의 인격으로 나타나는 그리스도 없는곳엔 성령도 오시지 않고 아버지와도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임한 영혼은 구약의 선지자를 칭하는 "나비"상태가 되며(로에,호제와는 다릅니다.)
나비는 자신이 하나님과의 연합으로 하나님 자신처럼 되는 현상을 말하며(다른 이견이 있더라도 어원적인 의미는 해독불가임)스데반이 죽을때 마치 그리스도처럼 행동하고 기도하던 것처럼 행합니다.
바로 "한몸" 현상으로 이해되는 이상태가 가장 거룩한 상태로 보여집니다.
이 비밀이 크다더니 과연 그러합니다.
"나비"를 왜 네맘대로 해석하냐고 말씀하시는분은 저는 이런체험이 있기에 가능한 해석이고 다른분들은 그냥 호제와 동일하게 이해를 하셔도 무방합니다.(잘모르시겠으면 성경사전을 참조하시기를)
빛비춤,계시 등을 처음의 단회적인 것으로만 이해하게 되면 그리스도는 생명은 주시지만 생명의 풍성은 다른곳에서 얻으려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계시도 그냥 깨달음정도를 계시로 이해하게 되면 자기 자신을 우리안에 계시하시기를 원하시는 비밀을 모르게 됩니다.
둘이 한몸이 되야합니다.
부부는 원래 그래야 부부입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는 그리스도와 하나여야 합니다.
한몸현상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부부간의 일인것처럼 그리스도와 우리도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야함을 주님은 누누히 말씀하십니다.(내가 떠나가는것이 실상은 유익이라,내가 저안에 저가 내안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가지니)
이글이 잘 이해가 안가는분들이 있을줄압니다.
실상은 이해를 하는분을 많이 못보고 살았지만 그나마 기대를 해봅니다.
시편의 표현인 "깊은바다가 서로를 부름같이" 서로를 부르며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게 하나니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 이라는 비밀을 깨달아주시기를 바랍니다...
모셔온글.....
'진리와 생명의 증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거듭남-생명의 씨를 받음..... (0) | 2013.01.14 |
---|---|
[스크랩] 영과 생명의 의미..... (0) | 2013.01.14 |
[스크랩] 말씀의 체현 ..... (0) | 2013.01.14 |
[스크랩] 교회의 기초는 사랑..... (0) | 2013.01.14 |
[스크랩] 어떤 선견자가 본 교회의 길..... (0) | 2013.0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