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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와 생명의 증거

[스크랩] 종교적인 교리를 신봉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종교적인 교리를 신봉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교리는 광의적으로 신앙의 특정체계를 진리로 받는 것을 말합니다.

어느 형태의 종교에나 다 존재하지만 특별히 기독교내의 교리만큼 그 내용이

방대한것은 없습니다.

 

성경에는 교리라는 단어조차 등장하지 않으며 유사한 것으로 "장로들의 유전"이라는

전승되어오거나 현시대의 탁월한 가르침을 형식의 종교적이고 지식적인 틀안에 가둬두고 이를

맹신하게 하고 강요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현시대에도 동일한것이 존재함을 이미 말씀드림같이 어느 교단에서나 흔히 발견하는 이런

교리들은 사실상 성령안에서의 깨달음과 더 나은 가르침을 받는것에 제한을 가하는 역활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고전2장의 여러 증거들로 전하여준 복음이

하나님의 지혜이며 성령의 가르치심임을 누차 강조합니다.

 

바울은 이 모든것을 계시로 말미암아 받음을 서신에서  강조하며 다시 골로새서를 통해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사 하나님을 알게하시고" 이 지혜와 계시의 정신(영)을 받기를 권고합니다.

 

이미 형상화되고 체계화된 교리와 지식의 가르침에 갖혀 있으면 이것을 얻기가 매우 힘이 듭니다.

마치 네모난 강철케이스안에 사람을 가둬두고 그안에서 같혀서 살라고 말함과 같습니다.

 

사람은 분명 살아있는 존재인데 살아있는 사람은 자라고 움직여야 하거늘 케이스에 가두면

절대로 자라지를 못합니다 우물안에 개구리가 되어 자신들만의 특정한 교리에 만족하며

교주에게 맹신하며 살아가는것이지요.

 

이런일을 행하는 교회들은 특정하고 전형적인 말들을 합니다.

 

 몇개월만 차분히 배워라

 이미 훌륭한 깨달음들이 있으니 이것을 먼저 배우라

 더 깊은것을 알아야 한다

 

또다른 특징들은 이런 가르침의 틀에서 벗어남에 대한 강한 배타성을 가집니다.

교단 교회, 독립교회 가릴것 없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이런일은 우리 주위에 늘 존재합니다.

 

그안에서 매우 갈급해하는 영혼들을 마주치다보면 마음이 많이 쓸쓸하게 느껴집니다.

이런 갈급함은 이미 그가 교리의 틀을 벗어난상태임을 말합니다.

 

교리안에서 그대로 믿는것은 매우 위험한것이 사실상의 영적 사막화가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이끄시는 젖과 꿀이 흐르는 신령한 가르침은 심령상의 풍요를 줍니다.

 

하지만 교리는 그저 문장들의 주입외엔 아무것도 없으며

경건의 모양만을 가지며 능력은 없습니다.

 

성령은 살아계신 영으로 우리에게 지속적인 가르침을 주십니다.

하지만 대부분 이런 사실에 대해서는 눈감고 귀를 막은 상태로 그저 불러주는대로 믿습니다.

 

답습과 모방이라는 특성을 가지는 이런 교리주의는 사막이며,그자체로 죽은것입니다.

살아있는 신앙,깨어있는 신앙은 이런것을 싫어합니다.

 

자칫 방종으로 보이기도 하는 이 "진리안의 자유"를 맛본자들은 교리적 냄새에는 고개를 돌립니다.

그러면 교리주의 자들은 항상 말합니다. 믿음에서 떨어졌느니,그래서 구원받겠냐느니 시험들었느니 등등

 

성경을 머리로만 이해하면 너무도 쉽게 교리주의자가 됩니다.

혹자는 말하기를 "서울대생은 믿고나면 3개월만에 교리를 체계화한다"는 말을 하더군요

 

결국엔 이성 수준에서 멈춘것을 애써 외면하려하여 생명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참된 생명을 맛보지 못한 사람이 입술로 반복한다고 이런것이 임하지는 않습니다.

 

계시를 받아야 합니다.

새로운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하늘에 속한 새것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직접주신것을 받아야 합니다.

 

이런일에도 물론 실수와 위험부담은 늘 존재합니다.

직통계시파,공교한 성경해석,신비주의,성령인줄 착각하는 미혹의 영들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살아계신 그분께서 항상 새롭게 주실것입니다.

 

기존의 알던 가르침을 더욱 진일보하게 이끌어주시기도 하며

전에 뿌연 안개같은 진리들을 명확하게 알게 해주시며

성경을 새로운 관점으로 읽게 해주시며

깨우침을 주신 그것이 바로 내영혼을 살리는 생명이 되게 해주시는 일들.

 

이러한 직접듣고 배운 자들에대해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버지께 듣고 배운 자들은 내게로 올것" 이라는 말씀으로 확증하십니다.

 

생명의 성령께 직접듣고 배운자들은 능력이 있습니다.

이 능력은 사람들을 생명으로 인도하는 참된 능력이 되며

때때로 이적을 동반하기도 합니다.

 

오죽하면 "바울의 손으로 희안한 일들을 행하게 하신다"는 말씀이 있을정도이니

사람들이 병가운데 일으킴을 받는것은 그냥 일상다반사로 여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능력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앞에 꿇게 함에 있습니다.

이런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하는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능력없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도 많다보니 능력없는것이 정상이 되어버린 요즘

 

기도의 능력

전도의 능력

신유나 능력행함

은사의 나눠줌

 

이런것은 잘못된 은사주의자들이나 하는것들로 치부되어버리는 기현상도 생깁니다.

실제로도 은사주의 자들도 이런것들을 나름 행하지만 확실히 다른것은

그리스도의 온전한 증거의 차이에서 확인할수 있습니다.

 

산을 뒤집고 병자를 수백명을 치유해도 그리스도가 없으면 말짱도루묵

병이랄것도 없는 감기나 체한것을 낳게 해도 그리스도가 그안에 풍성히 거하게 한다면 하늘의

영광

 

교리주의안에 있을때는 절대 모릅니다.

본인이 교리의 틀에 있는지를.....

 

저도 일정부분 그런면이 있지나 않은가 늘 주의 합니다.

 

교리는 인간의 지성속에 광대하신 하나님을 가두려는 바보짓과 같습니다.

이런 교리와 체계화된 성경해석의 비다양성은 매우 치명적으로 사람을 어린아이 수준으로

만듭니다.

 

현대교회의 여러문제중에 가장 위험한것이 사람의 계명을 진리삼아 가르치는 이런 교리들입니다.

물론 성경구절의 나열은 존재하지만 그저 나열일뿐 진정한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은

아닙니다.

 

"침례교회는 침례교인숫자만큼의 신학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성경해석의 다양함을 인정한다는 말인데.. 요즘 그렇다는 말이 아니고 예전에 그랬다는....^^

 

많은경우 성경해석에 대해 매우 가톨릭 스러운 태도를 취하는 경우의 교회들이 있습니다.

"성경은 교황만이 해석할수 있다" 와" 이미 세워진 말씀에 순종하라" 비슷하지 않습니까.?

 

교주 사역을 하는 어떤자들의 특징은 자신만이 계시를 받고 자신만이 가르치려는 종교적인

야심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을 높이는 말을 많이하며 내가" 또는 나를" 만나서 이런 특별한

깨달음을 얻는다는 둥 자신을 우상화 시키는 말을 많이합니다. 

 

사람은 각각 하나님의 깨달음을 받아야 하며 이것은 어떤 경우도 제한을 받으면 안됩니다.

바로 성령을 제한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것에 대한 이글이 도저히 이해가 안가신다면 스스로 한번 생각을 해보시면 좋습니다.

나는 어디까지 어느 분량수준의 교리에 갇힌자인지...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자들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교리)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데로 나아갈지니라...히6:2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가 믿는일과 아는일에 있어서 완전한 생명의 의에 이르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생명의 온전함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출처 : 베다니사랑과 복음- 평신도 교회
글쓴이 : 본향그리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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