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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와 생명의 증거

[스크랩] 감사하는 삶....

 

 

 

영광의 왕이 뉘시뇨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셀라) (시 24:10)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찌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찌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 가시리로다

(시24:7)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약2:1)

 

우리가 주님에 대하여 아는것은 그분은 영광의 주인이시고 영광의 왕 이시라는 점 입니다.

 

하지만 주님이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이 땅에 오셨을때는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빌 2:6~7)

 

종의 모습,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본래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은 영광의 하나님 이신데 영광의 본체 이심에도 영광을 버리시고

마치 잡혀 죽기 위하여 예비된 종으로서의 모습으로 나타나심에 하나님의 가장 큰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부인하는 방법으로 아들을 종으로 제물로 주신것입니다.

 

주께서 말씀 하심 처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 하심은

이미 주님이 그 길을 먼저 걸어 가심을 말씀 하심입니다.

 

모든 이들보다 가장 앞선 그 걸음은 순종의 길이며 고난이며 죽음의 길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속성인 영광을 버리는 자기 부인을 하심의 가장 큰 이유는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단 한마디 가장 큰 정의가 되는 단어가 바로 이 사랑이고(요일4:16)

사랑의 명령을 받아 사랑을 행하기 위하여 사랑으로 행하시고 죽으신 순종의 목적도 동기도 결과도 사랑 입니다.

 

사랑이 무엇이냐고 뭍는다면 저는 과감히 그리스도를 바라보라고 말씀 드릴것입니다.

자기 영광을 버리심,낮아지심,종으로서의 순종,고난,죽음....

 

우리가 그리스도인 이라면 우리에게는 이 자기 부인이 늘 뒤따라야 합니다.

본래의 자기 생각,자신의 행습,자신의 본래 모습까지 다 부인되는 일에는 그리스도가 가장

큰 깨달음을 주십니다.

 

가장 높으신 귀하고 귀하신 그 이름이 도리어 사람들에게 외면을 받고 죽음을 당한것은

낮아짐과 순종으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심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자신의 의 를 버려야 하나님의 의 가 사람에게 임하기에

자신의 것을 버리는 이 일로 우리가 그리스도인 됨을 증거함입니다.

 

요즘들어 가장 많이 머리속을 오고가는 한가지 단어는 "벌어서 남주자" 입니다.

믿는 이들도 가장 포기하기 힘든것이 물질인데 때로는허탈합니다.

 

어떨때 가장 허탈할까요? 아마 그리스도의 사랑을 드러내고 나타내어 자기것을 아끼지 아니하고

수고와 노력과 힘든 시간을 들여서 얻어낸 물질을 나 외의 사람에게 공급하고도 아무런 칭찬도 고마움도 표시 받지 못할때입니다.

 

받는 이들은 나름의 자격을 갖고 있습니다.

혹은 부모 형제 친구 동료 혹은 스스로 남의 것을 받아야 하는 가난한 수혜자로 자처하는 이들...

 

공급은 받고 뒤통수를 때리는 일들이 참으로 허탈하지 않는지요?

당연히 받을것 받았고 주는 너는 당연한 것을 했다는 듯한 태도들...

 

배워서 남주는 일도 숭고하지만 벌어서 남주는 일은 더욱 숭고 합니다.

자신이 정당히 취득한 물질은 노력, 시간, 땀과 힘겨운 시간들의 결과이며 생활의 눈에

보이는 열매들입니다.

 

아무댓가 없이 주기는 정말 힘들지만 그래도 그리스도인이라고 주고 공급합니다.

하지만 수혜를 받은 이들은 별다르게 고마워 하지 않습니다.

이쯤되면 더 이상 주고 싶지 않지요. 하지만 이것 한가지만 기억해주십시요.

 

받을것 받았고 내가 받는 것은 당연하기에 그저 별다른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감사는

바로 평상시의 우리의 모습 이라는것을요.

 

온세상에서 가장 값진것은 사람이고 특히 가족이고 특히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특히 자신을 사랑하십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리는 모습은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을 주시는 모습과도 흡사합니다.

아침 일찍 아들과 산에 오르면서 아버지는 아무말도 없습니다.

 

어찌 얻은 아들인데....

 

이 아들을 우리에게 주심에 우리가 드러내야하는 감사는 어때야 할까요?

"당연히 약한 피조물인 우리가 받을것 받았고 누려야 할것 누림이기에 쬐끔~감~사 합니다." 정도의 표현이면 족할까요?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을때 우리는 이런 뻔뻔함을 삶에서 드러냄인것입니다.

그저 공짜 구원받았고 이젠 그저 믿는 자로서 이땅에서 그럭 저럭 살다가 죽어서 천국가자는 생각은 당연한 수혜자를 자처하며 요식적인 감사 표시를 하는 이들과 아무런 차이도 없습니다.

 

받고 뒤통수를 치고 받고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되 삶에서 생활에서 보이는것...

한번 우리 모습을 생각해 보아야 할 시간인것 같습니다.

 

나의 감사는 삶에서 생활에서 실재적으로 충분히 나타나지고 있는가.

 

진정한 감사는 헌금도 아니고 입술의 고백도 아니기에

내 삶이 그분을 완벽히 좇아 가려는 처절한 몸부림 아닌지요.

 

우리가 표할수 있는 가장 큰 감사는 우리의 삶속에 나타나는 그리스도 입니다.

 

뻔뻔해지지 않을 유일한 방법은 삶속에서 주님의 형상과 모습으로 나타나기 같습니다...

 

어느 형제의 글....

 

출처 : 베다니사랑과 복음- 평신도 교회
글쓴이 : 본향그리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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