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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와 생명의 증거

[스크랩] 생명의 법의 근원은 거듭남....

 

생명의 법의 근원은 거듭남

 

우리가 생명의 법의 구원을 말하려면 반드시 거듭남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 이유는 거듭남이 하나님의 생명을 우리 영 안으로 영접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거듭날 때 우리 영안에는 하나님의 생명이 있게 되고, 하나님의 생명이 있으면 자연적으로 이 하나님의 생명에서 나온 생명의 법이 있게 된다.

 

거듭남을 말하려면 또한 사람의 창조부터 말해야 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손에 의해 지어졌을 때 선하고 정직한 인간의 생명을 얻었을 뿐 거룩하고 영원한 하나님의 생명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가장 중심적인 목적은 그분 자신의 생명을 사람 속으로 조화하여 사람과 연합하심으로 하나님과 사람의 하나를 이루는 목표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 사람의 몸과 혼외에 사람을 위해 특별히 영을 지으셨는데 이 영은 사람이 하나님의 생명을 영접하는 기관이다

우리가 이 영을 사용하여 영이신 하나님을 접촉할 때 그분의 생명을 얻어 그분과 연합하여 하나님의 중심적인 목적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의 생명을 영접하기도 전에 먼저 타락해 버렸다.

사람의 타락은 사람으로 하여금 범죄 하여 하나님께 죄를 범하게 하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생명을 영접하는 기관인 사람의 영을 죽게 한 것이다.

영이 죽었다는 것은 영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교통하는 기능을 잃고 하나님과 이간되어 사람이 다시는 하나님과 교통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므로 사람은 영을 사용하여 하나님을 접촉할 수 없게 되었고 그분의 생명을 얻을 수 없게 되었다.

 

이럴 때 사람에게는 두 방면의 필요가 있다.

한 면은 하나님이 사람의 타락으로 범한 죄를 해결하는 것이고(죄 사함), 또 한 면은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신 중심적인 목적이 이루기 위하여 사람의 죽은 영을 다시 살아나게 하고 그분의 생명을 얻도록 사람을 거듭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에도 소극적인 면과 적극적인 면이 있다. 소극적인 면은 주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사람을 위해 피를 흘려 구속을 이루시어 사람의 죄를 해결하신 것이고,

적극적인 면은 주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생명을 해방하고 주 예수의 부활로 말미암아 그분의 생명을 성령 안에 두어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거룩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이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게 하신 것이다.

이렇게 성령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생명을 영접하게 하는 것이 곧 우리를 거듭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은 어떻게 우리를 거듭나게 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

 

성령은 먼저 환경면에서 우리로 복음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우리에게 기회를 예비하신다.

그런 다음 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비추고 감동시키어 우리로 죄를 자백하고 자책하며 회개하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생명을 얻게 한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감춰져 있고, 하나님의 말씀은 곧 생명(6:63)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영접할 때 하나님의 생명은 우리 안에 들어와 우리를 거듭나게 한다.

 

그러므로 거듭남은 다른 것이 아니라 사람의 생명 외에 하나님의 생명을 얻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을 이렇게 영접할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는다(1:12). 이 권세 자체는 바로 하나님의 생명이기 때문에 이 생명이 있을 때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있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그분의 자녀가 될 때 우리에게는 자연적으로 하나님의 성품이 있게 된다(벧후 1:4).

우리가 이 성품으로 산다면 하나님을 닮게 되므로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 나타내게 된다.

하나님의 생명은 어떻게 우리로 하여금 그분을 닮도록 우리 속에서 역사 하는가? 그것은 중심에서 둘레에 이르는 것으로서, 영에서 혼에 이르고 그 다음에 몸에 이르러 밖으로 확장하는 그의 역사를 하는 것이다.

 

우리 안에 들어온 하나님의 생명은 우리 영 안에 들어와 우리의 죽은 영을 살리고 우리의 영을 활발하고 신선하며 강하고 능력 있게 하며 하나님을 만지고 느끼며 하나님과 달콤한 교통을 갖게 한다.

그런 다음 하나님의 생명은 우리의 영 안에서 우리의 혼 각 부분으로 확장되므로 우리의 생각과 애호와 주장 등등이 점점 하나님을 닮아가고 하나님의 냄새가 나게 한다. 이 얼마나 놀라운 변화인가!

그러나 이 뿐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은 우리의 몸에도 생명의 성분이 있도록 우리 몸에 확장되기까지 지속적으로 역사한다.

이것이 로마서 811절에서 말한, 우리 속에 거하는 하나님의 영이 우리의 죽을 몸도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은, 우리가 들림 받아 변화되어 영광에 들어가 완전히 그분을 닮을 때까지, 우리의 영과 혼과 몸, 우리의 온 존재가 하나님의 성질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성분과 냄새로 가득 찰 때까지 계속적으로 역사하며 확장된다.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의 이 같은 계속적인 역사와 확장은 우리를 무시하거나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감정의 경향과 생각의 협력과 의지의 굴복을 요구한다.

만일 우리가 그 역사하심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생명과 협력하지 않고 그것을 곧장 따르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생명은 그 능력을 확장하고 그 기능을 나타낼 길이 없다. 사람은 살아있고 애호가 있으며 사상과 의지가 있는 산 존재이기 때문에 협력하려 하는가, 협력할 수 있는가의 여부가 또 하나의 문제이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실 때 하님의 생명 외에 새 마음을 우리에게 주시고 새 영을 우리 속에 두시어(36:25) 우리로 하여금 협력하기를 원하고 협력할 수도 있게 하였다.

마음은 원함과 관계있고, 영은 능력과 관계된다.

우리가 본래 가지고 있던 마음은 하나님을 배역하여 강퍅하게 옛것으로 변했다.

그러므로 돌 같은 마음, 곧 옛 마음이라고 불렀다. 이 옛 마음은 하나님을 배역하고 거절하며 하나님과 협력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제 하나님이 주신 새 마음은 우리의 옛 마음 외에 다른 마음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거듭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돌 같은 마음이 부드러워져서 고기 같은 마음이 되며 새롭게 됨으로 새 마음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이 새 마음은 하나님께 향하고 하나님과 하나님에게 속한 일들을 사모하며 하나님을 사모하는 새로운 기관으로서, 우리로 기꺼이 하나님과 협력하며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자유스럽게 확장하여 역사하게 한다.

본래 우리가 가지고 있던 영은 하나님을 떠남으로 죽게 되어 옛것이 되었기 때문에 옛 영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 옛 영은 이미 하나님과 교통하고 하나님을 접하는 기능을 잃었으므로 자연히 하나님과 협력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새 영도 우리의 옛 영외에 다른 영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거듭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죽은 영을 살려 산영이 되게 하시고 새롭게 하심으로 새 영이 되게 하시는 것이다.

 

이 새 영은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으며, 하나님과 영에 속한 일을 깨달을 수 있으며, 하나님을 접하는 새로운 기관으로 우리로 하나님과 협력하게 하고 또한 하나님과의 교통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이 밖으로 확장되고 역사하게 한다.

우리에게 새 마음이 있을 때 우리는 기꺼이 하나님과 협력하게 되고 새 영이 있을 때 하나님과 협력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새 마음과 새 영은 하나님을 사모하고 하나님을 접할 수 있게 하고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이 밖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되고 역사하게 할 뿐, 하나님 자신의 그 거룩한 표준에 이르도록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그 무한한 요구에 응할 수 있게 하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실 때 우리를 위하여 가장 영광스럽고 뛰어난 일을 하셨는데, 그것은 그분 자신의 영인 성령을 우리의 새 영 안에 두신 것이다.

 

이 성령은 그리스도의 체현이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체현이다.

그러므로 이 성령이 우리 속에 들어올 때 그것은 곧 삼이일 하나님이 우리 속에 들오신 것이다. 이리하여 창조자가 피조물과 연합되었다.

영원한 영이자 한량없는 영인 하나님에게는 한량없는 기능과 가장 뛰어난 능력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새 영안에 거하는 하나님의 영은 한량없는 이 능력을 사용하여 우리에게 바르고 공급하여 역사하고 움직이게 하시어 우리로 하여금 우리 위에 있는 하나님의 무한한 요구에 응하게 하고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의 영 안에서부터 혼을 통과하여 우리의 몸에까지 확장되게 하고 최종적으로는 우리로 완전히 하나님의 영광의 단계에 까지 이르게 한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보여주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은 사람의 자기 개선과 다르다는 것이다. 사람의 자기 개선은 사람이 본래 갖고 있는 혼과 몸과 그 기능 위에 수고하는 것에 불과하다. 또한 사람의 능력은 본래 제한되었기 때문에 자기 개선이 성공하더라도 극히 한정되어 있다.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도 우리 혼 각 부분을 거쳐 새롭게 하여 몸에 이르는 것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영이 하나님의 생명과 함께 우리의 영 안에 추가되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무한한 요구에 족히 응할 수 있는 거룩하고 무한한 능력을 갖게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추가하는 것이지 무엇을 개선하는 것은 아니다. 개선하는 것은 본래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수정하는 것으로서 한계가 있다. 추가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에게 속한 것을 더하는 것으로서 무한한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들은 거듭남이 우리로 하나님의 생명을 얻게 하는 것임을 분명히 알게 한다.

이 생명 안에 자연적인 기능이 포함되어 있는데 생명의 그 자연적인 기능이 바로 생명의 법이다. 이 생명의 법은 하나님의 생명에서 나왔지만 거듭남으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들어왔기 때문에, 하나님의 생명이 이 생명의 법의 근원이고 거듭남은 이 생명의 법의 유례이다.

 

생명의 법의 의미를 알려면 법이 무엇인지 알지 않으면 안 된다. 법은 자연적인 법칙이며 계속 변치 않는 규칙이다. 법이 반드시 생명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생명은 반드시 법을 가지고 있다

생명이 지니고 있는 이 법을 생명의 법이라고 부른다.

이 생명의 법은 또한 그 생명의 자연적인 특성과 천연적인 기능이다.

예를 들어, 고양이가 쥐를 잡고, 개가 밤에 지키고, 귀로 소리를 듣고, 코로 냄새를 맡고, 혀로 음식을 맛보며, 위로 소화할 수 있는 이 모든 본능은 다 생명의 자연적인 특성과 천연적인 기능이다.

살아있는 자유로운 생명은 사람의 가르침이나 재촉이 없어도, 조금도 강요하지 않아도 극히 자연스럽게 그 생명의 이러한 특성을 발전시키고 이러한 가능을 나타내게 된다.

생명 안의 이러한 자연적인 특성과 천연적이 기능을 가리켜 생명의 법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생명은 가장 높은 생명이고 가장 뛰어난 생명이기 때문에 그분의 이 생명의 특성과 기능도 반드시 가장 높고 뛰어난 것이다. 가장 높고 뛰어난 이 특성과 기능이 곧 하나님의 생명의 법이기 때문에 이 법은 가장 높고 뛰어난 것이다.

우리는 거듭남으로 하나님의 생명을 얻었으므로 자연히 하나님의 생명 안에서 가장 높고 뛰어난 이 생명의 법을 얻었다.

앞에서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말한 부분에서 말한 것처럼 오직 하나님의 생명만이 생명이기 때문에 우리가 말한 생명의 법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생명의 법을 말한 것이다.

생명의 법은 특별히 신약 하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이것은 구약시대에 하나님이 시내 산에서 내리신 율법과는 다르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은 사람의 몸 밖에 있는 돌비에 쓰인 율법을 주셨다. 그 율법은 밖에 율법이요 의문의 율법으로서 사람 밖에 사람에 대한 요구가 한 조항씩 있으며 사람에게 어떤 것을 하거나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에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그것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이것은 그 율법은 선한 것이지만 사람이 악하고 죽었으므로 그 율법의 요구에 응하는 생명의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도리어 그 율법의 정죄아래 떨어지게 된다.

이것이 로마서 83절에서,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할 수 있는 그것 이라고 말한 것이다.

 

신약에 와서 하나님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어 그분의 생명을 이 생명의 법과 함께 우리 안에 두셨다. 이 생명의 법은 신약시대에 하나님이 특별히 우리에게 주신 내적 율법이다.

이것은 구약 예레미야 3133절의 내가 나의 법을 그들....속에 두며 라고 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룬다.

이 생명의 법이 우리 속에 두어졌기 때문에 그것의 소재하는 곳으로 말하자면 구약의 율법처럼 사람 밖에 있는 외적 율법이 아니라 이면적 율법이다.

또한 이 생명의 법은 하나님의 생명이서 나왔고 하나님의 생명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그 성질로 말하자면 구약의 율법은 의문에 속한 의문의 율법이고 요구만 하고 공급할 수 없지만 이 생명의 법은 능히 공급할 수 있다.

 

이 생명의 법은 하나님의 생명의 자연적인 특성과 가능이므로 하나님의 생명 안의 모든 내용을 자연스럽게 하나씩 규제할 수 있다. 이렇게 규제한 결과 밖에서의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에 응답하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 비유로, 이 생명의 법이 작용하는 상태를 설명하겠다..

만일 우리가 한그루의 메말라 죽은 복숭아나무에게 율법들을 세우고 그 나무에게 너는 반드시 파란 잎을 내고 붉은 꽃이 피게 하여 복숭아를 맺어야 한다고 요구했다고 하자.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이러한 요구는 연초에서 연말까지 헛된 것이며 조금도 효과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메마르고 죽은 나무이므로 밖의 율법의 요구에 응답할 생명의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밖에서 율법으로 그 나무에게 무엇을 요구하지 않고 생명을 그 안에 주입하여 그 나무를 살아나게 한다면 그 생명이 자연적인 기능을 갖게 되어 그 나무는 때에 따라 잎이 자라고 꽃이 피며 열매를 맺게 된다.

밖의 율법의 요구에 부합될 뿐 아니라 넘어설 수 있다. 이것이 생명의 법의 작용이다

 

또 예를 들어, 만일 우리가 죽은 사람에게, “당신은 호흡해야 합니다. 당신은 밥을 먹고 자야 합니다. 당신은 활동해야 합니다.” 라고 말한다 하자.

우리가 아는 바와 같아 이런 율법의 요구들은 죽은 사람에게 아무런 효과가 없으며 한 항목도 이룰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부활의 생명을 그의 속에 두어 그를 살아나게 한다면 그 사람은 지극히 자연스럽게 호흡하고 밥을 먹으며 잠을 자고 활동할 것이다. 이것 또한 생명의 법의 작용으로 인한 것이다.

이 두 비유에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 전존재의 영적인 생활이 유리 자신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힘써 자기 개선을 하여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이미 얻은 하나님의 생명이 책임지는 것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생명이 이 생명의 법과 더불어 우리 영 안에 거하여 만일 우리가 이 영 안에 있는 생명의 법을 좇아 살고 행한다면 이 생명의 법은 자연적으로 하나님의 생명 안의 모든 내용들을 우리 속에서 하나씩 규제하여 밖에서의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에 부합되게 하며 심지어 넘어서게까지 한다.

이것이 로마서 84절에서 말한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라 이다.

우리 심비에 새긴 생명의 법을 로마서 82절은 생명의 성령의 법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이 법이 하나님의 생명에서 나온 것이고 하나님의 생명에 속한 것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영 안에 있는 것이며 하나님의 영에 속한 것임을 말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생명은 하나님의 영 안에 있고, 하나님의 영을 하나님의 생명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하나님의 생명은 하나님의 생명 자체에 중점을 두고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의 생명의 집행자에 중점을 두고 있을 뿐이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생명은 인격이 없고 하나님의 영은 인격이 있다.

이 인격이 없는 생명은 이 인격이 있는 영에 속하며, 인격이 있는 영과 나눌 수 없는 것이다.

인격이 있는 이 영이 바로 하나님의 생명을 우리 속에 가져왔다. 이 생명은 법을 지니고 있는데 그것이 생명의 법이요 또한 여기서 말한 생명의 성령의 법인 것이다.

이 법은 그 근원으로서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고, 또한 그것의 집행자로서 큰 능력과 인격이 있는 하나님의 영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 생명의 영의 법은 하나님의 한량없는 요구에 응할 수 있는 영원하고 한량없는 큰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앞에서 말한 것은, 구약의 율법이 돌비에 새긴 의문의 율법으로서 사람에게 여러 가지 요구를 하나 결국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고, 신약의 법은 우리 심비에 새긴 생명의 법으로서 우리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지만 결국 하나님의 모든 풍성을 우리 몸에서 자연적으로 규제하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모든 요구에 응답하고도 남게 하는 것임을 보여 준다

이 얼마나 놀라운 것이며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가!

이것이 신약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중심적인 은혜이다. 우리는 마땅히 그분에게 감사하며 찬양해야 한다.

 

모셔온글.....

출처 : 베다니사랑과 복음- 평신도 교회
글쓴이 : 본향그리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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